[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순한 맛 마른장마 끝난 후 폭염과 열대야가 시작되고 나서 바로 벼락 호우가 내릴 것이라는 소식이다. 예년보다 빠르게 전국 대부분 지역의 한낮 기온이 36℃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당분간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된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대상포진을 겪고 나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은 불편한 계절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서재에 머물 때는 창문 커튼을 치고 외출할 때는 가능한 햇빛을 피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올여름 찜통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에 벌써 여름을 날 걱정이 앞선다.

지난 주말 갑자기 숲을 걷고 싶은 마음에 불현듯 혼자 차를 몰고 평창을 다녀왔다. 초록빛 물결처럼 길게 펼쳐진 산하가 푸른 파도가 출렁거리며 밀려오듯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늘을 뒤덮는 나뭇가지 틈새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숲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무성한 나뭇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황홀하고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을 베풀어준다. 오랜만에 뜨거운 열정이 가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숲속에 숨어서라도 가끔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햇살은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혹독한 무더위에 몸과 마음이 탈진하지 않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숲이 진정 감사하다.

지금까지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갈 날을 기대하며 상상했던 낭만 여름은 벌써 끝난 것 같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후드득후드득 장대비가 내리는 한적한 시골에서 여름 정취를 느끼기는 쉽지 않은 계절이다.

통계적으로 정확하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일 년의 반이 여름일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15년 전쯤 대구에서 여름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프리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듯 그해 여름은 정말 혹독하였다. 한낮에 사무실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아스팔트 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요즘 다시 똑같은 기분이 느껴지지만 지난 경험이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최근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걱정하며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면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걱정은 조금 덜하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이다.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근육이 커지고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과거의 경험과 저력으로 바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한세월을 산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질곡의 계곡을 건너는 일이며 상실의 아픔을 가슴에 담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용기 있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실패나 고난에 빠지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을 맞을지라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더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니까 사람이지 그렇지 않다면 AI나 로봇이 아니겠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처럼 흔들리니까 사람이라는 말은 당연하다.

요즘 들어 조기교육 사교육 열풍이 더 거세졌다. 실제 학습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사회 정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있는 가운데 시작 나이는 점차 낮아지고 참여율과 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는 정말 쉽지 않은 시절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일이 바빠서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와 함께 학원이나 스포츠센터에 자주 가는 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때로는 감사하다. 차를 타거나 걸어가면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나 친구들과 관계 등을 주절주절 말하는 손자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지금은 다소 힘들지라도 세월이 지난 후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한때는 각종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수기를 자주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합격하였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감동적인 성공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겉으로 보이는 현실에 감동하고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은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충분히 예외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미담보다는 가난 탓에 기회를 잃어버린 천재가 있는지 사회적 공백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현실의 장벽 앞에 멈출지라도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절의 속담이 그립다.

아파트 담장 위로 고개를 들고 있는 붉은 주황색 능소화가 활짝 웃으며 유쾌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기분이다. 길가의 화단에는 진한 보라색 라벤더가 허브 향기를 풍기며 지친 영혼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뜨거운 햇살에 지치고 힘든 여름이지만 하루하루 다른 모양으로 자라나는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면 생명이 용솟음치는 기분이 느껴진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지라도 나무와 풀들이 햇살을 받고 활짝 기지개를 켜듯 누구도 탈진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하는 순간이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과 생활에 지친 가장들이 초록의 자연을 바라보며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너그러운 여름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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