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칼럼] 김진웅 수필가
기나긴 가뭄에 저수지 바닥까지 드러내어 애태우더니 얼마 전부터 집중호우가 내려 소중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너무 커 안타깝다. 폭우가 끝나니 폭염이 와서 30도를 웃돌던 지난 월요일, 대학교 동기들과 낙가산을 다녀왔다. 등산도, 인생도 오르는 길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는다. 삶의 인생길을 안전하고 멋지게 내려가기 위해 등산도 하고 심신 단련을 하느라 온갖 노력을 한다.
청주시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낙가산은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낙가산 정상의 표지석에는 483m로 새겨져 있다. 청주 근교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보살사에서 낙가산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나, 용정동이나 용암동 쪽에서는 비교적 완만해서 이 코스를 선호한다. 폭염이지만 고마운 녹음과 그늘 도움을 받으며 보살사 계곡 쉼터까지 걸으니 몸도 마음도 충전하는 듯하다. 간혹 맨발로 걷는 사람이 나를 유혹한다.
낙가산이라는 지명은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 낙가산(普陀 洛迦山)에서 유래되었다. 옛 지리지에 '낙가산'에 대한 기록이 있어 오래된 지명임을 보여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명이 처음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동쪽 7리에 있다. 것대산에서 뻗어 나와 보살사(菩薩寺)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산을 오르다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고사목(枯死木)이 보인다. 하늘 향해 기개를 펼치며 울창하던 나무가 앙상하게 된 모습을 보니 우리의 늙음과 생로병사(生老病死)와 겹쳐 보인다.
늙음의 미학 제1장은 ‘비움의 미학’이다. ‘비움’의 실천은 ‘버림’으로써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꽃이 무척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은가. 성취의 청춘도 아름답지만 비움의 노년은 더욱 아름답다. 두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남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요, 손바닥을 쫙 펴고 죽는 것은 모든 소유로부터 비움이다. 집지양개(執之兩個)요, 방즉우주(放則宇宙)다. 즉, 두 손으로 잡아보았자 두 개뿐이요, 놓아버리면 우주가 내 것인 것을.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24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 이상)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국가적인 큰 과제이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 전보다 젊은이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듯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게 묻고 있으니…….
그래도 노인을 존중해야 한다. 늙음의 미학 중 ‘노련함의 미학’이 있다. 노련(老鍊)이란 단어에는 늙을 로(老)자를 쓴다. ‘노’자에는 ‘노련하다’는 의미가 있다. 오랜 세월의 경륜에서 오는 노하우(know-how)가 있어 노인은 지혜와 경험의 결정체다. 노인은 젊은이들을 선도하고, 젊은이는 노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낙가산이 속삭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