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박재명 수필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하는 차의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차량 계기판을 보니 시속 50km다.

50km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본 적은 언제였을까? 아마 면허증을 따고 서투른 운전을 할 그때였을 것이다.

그 후로 1차선 국도에서 규정 속도인 60km로 달리면 갑갑했다. 앞 차가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면 참지 못하고 추월했다. 그 운전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 속도가 왜 빠르다고 느꼈을까?

이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넉넉해져서 그랬을까? 사실 요즘은 차 운전 속도를 줄이고 다니긴 했다. 필자를 추월하는 차는 결국 신호등에서 만나는 일이 많았지만 빠르다느니 늦다느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전에 관한한 뒤늦게 철이 들었나 싶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임하고 나니 하는 일 없이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감을 절실하게 느낀다. 짧은 시간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그 시간들을 모아놓고 보면 통으로 빠르다.

일주일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휴일이 찾아오고, 주일을 지나고 나면 한 달이 지나가며, 달을 모아 놓으니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제 분가시킨 것 같은 아이는 벌써 수년이 지나갔고, 새로 태어난 손자도 돌아서니 두 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다닌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 가는 속도가 나이에 비례해서 빨라진다고 하더니 꼭 그렇다. 지나간 젊었던 시절, 어떤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맘에 하루하루가 길었는데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바쁘게 보냈다. 직장 일을 하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컸는지 그 과정을 모를 정도였다. 일도 일이었지만 목표가 있었으니 일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시간이 아까워 차를 운전할 때도 과속했다. 그것이 습관이 될 만큼 바쁘게 살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잘 해 주었던 기억은 없다. 그간 잘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는 아쉬운 마음이 자꾸 든다. 이제나마 조금 여유를 갖고 살아야지 해보지만 그도 습관이 되어서인지 잘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젊어 시간은 더디게 흘렀으나 운전 속도는 빨랐고, 이제 퇴직하고 잉여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고 운전 속도는 느려졌다. 묘한 반비례 법칙을 발견한 양 인생과 차의 속도를 비교해 보니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시계 속의 시간은 늘 한결같이 흐르지만, 마음에 흐르는 시간은 마음의 여유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여유 있을수록 시간은 빠르고, 차의 속도는 느려지는 법칙이라고 할까?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갈 때 눈에 보이는 것이 많은 것처럼, 느리게 살아야 보이는 것도 많은 법이겠지. 보이는 만큼 할 일도 많아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살아보련다. 이것이 같은 시간에 인생을 더 길게 살아보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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