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인 줄 알았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저 쇳덩어리로 태어나 투명한 랩을 잘라 내고 과일이며 채소를 신선하게 보이도록 씌워주는 일을 해 왔지만 세상은 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고 믿었다. 처음 주인장을 만나고 찰떡궁합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직감하여 헌신하며 살았다. 그래선지 대대적으로 이사를 할 때 버려지지 않고 알뜰하게 챙긴다고 믿었다.
적을 두고 있는 마트는 365일 문을 닫지 못해도 사람들은 돌아가며 쉰다. 주로 2교대로 일하는 그들은 밤 열시가 조금 넘으면 퇴근한다. 온종일 울려 퍼지던 음악과 조명도 꺼진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잠을 청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니 시류에 따를 뿐이다.
요즘이야 흔한 기계라지만 삼십여 년 전 만 해도 선배나 친구들을 마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귀한 몸이던 시절에 철없는 사람이 내 몸에 전기를 높이 올려 달구었다. 포장의 마무리 단계에 살짝 눌러주면 강하게 굳혀지는 판 위에 소고기를 구워 먹는 무례를 범했다. 그렇다고 몸이 축난 것은 아니지만 언짢았던 것은 사실이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크고 무거운 것들도 거뜬하게 포장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깜박깜박 정신을 놓게 되었다. 은박지를 대어 다시 숨을 쉬게도 하고 버튼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가 멈추지를 않는다. 주인장은 나를 들었다 내려놓고 뒤집기까지 한다. 양쪽의 나사를 풀어서 그예 속까지 본다. 사람들이 건강검진 할 때 입이나 엉덩이 쪽에 무언가를 깊숙이 넣고 들여다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삼십 년 넘게 근속했다고 해서 이렇게 건강을 잃는 것은 아니다. 수 해전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세상이 온통 물난리가 났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물건들을 매대 위로 올려놓고 전기를 내리고 떠났었다. 냉장고, 매대, 물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나도 평상시에 사람들의 허리와 가슴 사이쯤에 놓여 있었기에 안전할 줄 알았는데 웬걸 수장되고야 말았다. 하루 정도 그렇게 지내니까 물이 조금씩 빠지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제 살겠구나' 싶었는데 널브러져 있던 친구들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 벽과 바닥, 물건을 향해 물이 뿌려졌다. 내 몸도 몇 차례 물벼락을 맞고 말려지기를 반복하더니 전기를 먹여 주었다.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구사일생이었다. 엊그제 같지만 벌써 수 해전의 일이다. 그 일 때문인지 골골거리기 시작하더니 몸 안에 오장육부가 그만 삭아 버렸다. 누가 스치기만 해도 풀썩, 바스러진다.
주마등 같은 날들이 지나간다. 한때는 하늘의 큰 별인 줄 알았고 다음은 그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임을 눈치챘다. 나름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