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
아침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스며들지만 아직도 한낮의 열기는 여름을 느끼게 한다.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여름이 지나가야 하는데 곁에 머물고 있으니 온몸에 땀이 흘러 움직이기가 여간 불편하다. 비가 내린 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한강공원 꽃밭에는 황화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났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을꽃들은 열락에 빠져 신난 듯하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누그러지겠지만 당분간 폭염이 지속될 것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선다.
며칠 전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는 백로가 지났으니 곧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면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숲속을 거닐며 가을빛과 풍요로운 정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한강을 길게 가로질러 남산 위로 넓게 펼쳐진 하늘이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한강의 짙은 푸른 물빛이 깊고 고혹하다. 해 뜰 녘과 해질 녘의 박명이 지는 블루아워 시간대에 이르렀다. 해가 지고 노을이 사라지기 직전 하늘빛이 진한 푸른빛으로 점점 물들어간다.
빛과 어둠이 겹쳐지는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경계의 시간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사물의 윤곽이 흐릿해져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기 어려워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부른다. 단지 하늘빛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고단하게 하루를 마친 후 찾아오는 특별한 여유를 가져다주기에 더욱 감사하다.
황혼 무렵 검푸른 하늘 위에서 수 만 마리 찌르레기 떼가 마치 작은 점들이 모여 웅장한 교향곡 선율에 맞춰 군무를 펼치듯 일렁인다. 잠 잘 곳을 찾아가던 찌르레기들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 검은 회오리처럼 날아오르다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질서를 이루고 여유롭게 선회한다. 이 광경이 하늘을 무대 삼아 춤추는 발레리나의 고독한 울림으로 느껴진다. 풍경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음악을 들으면 풍경이 그려진다. 풍경과 음악은 서로 스며들어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하늘 위에 그려진 풍경화가 지치고 힘든 영혼을 감싸주듯 편안하다.
요즘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불편한 문제들이 많은 사람들을 걱정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국을 공격하여 곤경에 빠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여야를 막론하고 협상이나 타협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치열하게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이래저래 더욱 견디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빛과 어둠이 겹쳐지는 깊고 파란 하늘을 나는 새들의 검은 그림자처럼 반기는 개인지 해치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조차 어려운 불확실한 현실로 다가온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얼마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차 대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태평양 패권 유지를 위해 대만을 대중국 불침항모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과 같다고 하였다. 이제 한국도 불침항모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다. 섬이나 육지를 항공모함에 비유하여 지정학적 가치를 강조하는 말이지만 국가의 영토를 전략적 군사기지로 보는 시각이 달갑지 않다. 항공모함은 한 나라의 힘의 상징이다. 그나마 항공모함 건조 능력을 갖춘 조선강국이라는 것에 다소 위안을 얻는다.
양재천변 산책길을 한가로이 걸어가는데 무언가 머리위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길바닥에는 작은 초록 열매가 떨어져 있다. 안쓰러운 마음에 가만히 주워들어 길가 돌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무는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으면 초과한 분량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영양분을 비축하여 알찬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욕심과 욕망을 스스로 내려놓으면 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산책로 숲속에서 나무에게 소중한 지혜를 얻는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며 겉모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내면의 모습을 감추려고 마음의 가면을 쓴다. 바로 이 순간 강박과 불안 그리고 수치심에 빠져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역설적으로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스스로 부족함을 드러내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무슨 일을 해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이것이 취약성의 힘이다.
어둠을 항해할 용기가 있어야 자신이 가진 빛의 무한한 힘을 찾을 수 있다. 자주 도파민 같은 자극에 익숙해져 소소한 기쁨을 놓치는 것이 문제다. 빨간 머리 앤에게 기쁨은 진주알이 하나씩 한 줄로 꿰어지듯 자잘하고 소박한 기쁨이 소리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자주 떠오르는 시가 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 일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활짝 핀 꽃들을 배경으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가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사진을 꺼내어 본다. 지그시 꽃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주름진 얼굴이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온 흔적이다. 이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을은 화려한 단풍과 선선한 바람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숲길과 강가를 걸어가며 고즈넉한 풍경을 가슴에 가득 담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상일지라도 두려워하며 낙담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나무가 스스로 열매를 떨어뜨리듯 자신이 짊어진 욕심이나 욕망을 비워내면 한결 편안해진다. 얼굴을 스치듯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가져다준 축복이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순수의 가을이 느껴지는 여름의 끝자락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순간순간들이 사실 꽃봉오리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가을꽃을 바라보며 설레는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는 순간이 진정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