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평] 김희한 시인·수필가
아침 일찍 동생의 대추농장에 왔습니다. 사흘을 비가 오더니 농막 20미터 거리에 있는 연못물이 흘러넘쳐 마당도 연못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연못에서 논으로 연결된 도랑이 막혔습니다. 수로를 막는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꽃밭 일구던 호미로 떠내다가 연장을 바꿨습니다. 거인의 손가락 같은 갈퀴로 걷어내니 거인이 돕는 듯 일이 쉽습니다. 동생은 양수기를 동원하여 물을 빼는 중입니다.
원인은 연못에 있었습니다. 연못을 메워야겠다고 생각한 동생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쪽파를 캐서 연못에 던져 넣었습니다. 농장에 심은 사과나무와 대추나무 가지 자른 것도 넣었습니다. 날이 더우니 이런 것들이 썩어 연못의 물이 초록색으로 변해갑니다. 썩은 물을 뿜어내고 새 물을 넣고 있는데 큰비가 오니 물이 넘치면서 부유물이 도랑을 막았습니다. 두 시간째 걷어내는 중입니다. 또 막히면 건져내려고 기다리고 섰습니다.
연못에는 10여 년째 잡아다 넣은 우렁이와 민물 새우와 장어가 있습니다. 아예 연못의 물을 다 뺀다는 동생의 말에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장어도 민물새우도 좋지만, 나는 우렁이를 잡겠습니다. 우렁이 된장찌개는 행복을 불러오는 끈입니다. 동생이 우렁이 잡은 이야기는 전설입니다. 동네 샘에서 빨래를 마치고 집으로 오다 보니 제경이네 집 논에 우렁이가 있더랍니다. 초록색이 짙어지는 벼 사이를 겅중거리며 잡다 보니 양동이 두 개에 가득 찼답니다. 그때의 횡재를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말합니다. 늘 처음 이야기하듯 신나게 말합니다. 그때마다 같이 웃습니다.
나도 우렁이 추억이 있습니다. 한 시간이 족히 될 초등학교 가는 길은 논이 반입니다. 그냥 지나는 법이 없습니다. 벼가 한 뼘 자라고 있을 때부터 추수 끝내고 꾸덕꾸덕 논이 마를 때까지 눈은 논두렁에 있습니다. 우렁이를 찾으면 발보다 손이 먼저 나갑니다. 내가 잡은 우렁이 몇 개를 그대로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면 얼른 우렁이를 꺼내어 젓가락으로 살을 빼어 먹습니다. 그 맛을 못 잊어 지금도 논둑에 들어서면 초록 벼 사이를 얼른 훑습니다.
요즘은 날마다 동생 집으로 출근합니다. 제부가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짜그락짜그락 자주 싸우던 부부라 무슨 정이 있으랴 했는데 동생은 과일 농장도 살림도 다 팽개쳤습니다.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아프다며 자주 눕습니다. 약을 먹어야 가까스로 잠을 잡니다. 나는 동생에게 빚을 졌습니다. 내가 공부하는 내내 내 학비를 대느라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땀을 흘린 동생입니다.
시골에서 나와 천안 변두리에 농장을 사고 새 아파트로 이사 와서도 방 하나엔 추수한 콩, 들깻자루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시골에서 살던 때와 다름없습니다. 아예 농막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개다리소반에 밥상을 차리고 밭을 맬 때 쓰는 빵떡 방석에 앉아 먹습니다. 농막엔 아파트 짓는 인부 몇백 명의 밥을 지어내던 그릇과 참외장아찌, 포도주, 메주 띄우는 도구 등이 쌓였습니다. 치우고 버리고 닦아 내느라 한 달이 걸렸습니다. 벽지도 새것으로 바꾸고 전등을 밝게 하니 동생은 좋아서 웃습니다.
이젠 집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마당 여기저기에 쌓아 놓은 것들을 치우고 꽃을 심고 있습니다. 수국도 장미도 금잔화도 심었습니다. 분꽃이 가지를 넓히고 봉숭아도 줄기를 굵게 만드는 중입니다. 백일홍을 옮겨 심다가 아픈 허리를 폈습니다. 힘에 부치니 우리는 2시간짜리라고 말합니다. 2시간 일하면 힘이 쭉 빠져서 한나절은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리되고 있는 농장을 볼 때면 기분이 좋습니다.
연못물이 다 빠지면 우렁이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물 빠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꽃밭의 풀을 뽑고 있습니다. 어릴 때처럼 된장찌개에 우렁이를 그대로 넣을 것입니다. 동생이 연못으로 향했습니다. 물이 빠졌을 때 얼른 우렁이를 잡아야 한답니다. 양은 주전자를 들고 그녀를 따라가며 한 수 읊었습니다.
복숭아 붉게 익고 포도알이 굵어지고
대추가 절로 붉고 감이 배를 불리면
그대와 나, 입 안 가득 행복을 물겠네.
“그게 아니지, 언니!
대추가 절로 붉다니, 거름 주고 농약 치고 대추 순 자르느라 장딴지가 다 부었는디. 대추는 내가 붉히지.”
“그래, 햇빛에 다 탄 네 얼굴이 대추 얼굴이다. 어쨌든, 오늘 저녁은 우렁이 된장찌개다 ~~~!”
과부 자매는 지금 슬픔을 보내고 입에 웃음을 담는 중입니다. 장화 소리가 저벅저벅 장단 맞추며 따라옵니다. 어둠이 조금 늦게 왔으면 합니다. 연못 가장자리에 붙은 우렁이를 주전자 가득 담아다가 뚝배기에 우렁이 된장찌개를 끓일 것입니다. 군침이 넘어가는 입이 먼저 웃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