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호박은 억울하다. 겉모습만 보고 못생긴 사람에 비유를 한다.

심지어 호박꽃은 꽃도 아닌 양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남포 등불같이 환하게 꽃을 피우고 나 좀 바라봐 주세요! 입을 크게 벌리고 외쳐도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는다. 해만 지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물 같은 찬 이슬을 맞으며 밤을 새운다. 그리고 또 아침 해가 뜨면 목젖이 다 드러나도록 활짝 피어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품었던 호박이 영글면 스스로 시들어 낙화한다. 유년의 나는 담장의 호박 넝쿨 앞에 앉아서 호박꽃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을 즐겼었다. 이쁘지도 않고 조용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던 나와 호박꽃은 닮았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나는 호박꽃이 참 이쁜 꽃이라고 생각한다.

애호박 시절에 용케도 눈에 띄지 않아서 담장 은밀한 곳에 매달려 남몰래 익어갔다. 염천 더위에 폭염도 처서가 지나 서리가 내리고 입동이 지나며 된내기(된서리)가 내려도 묵묵히 몸집을 키우고 버텼다. 푸르른 시절에 애호박들이 인기가 좋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된서리를 맞고 잎이 누렇게 시들어서야, 잘 익은 늙은 호박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들은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그제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한다. 그리고 시집간 딸의 산달을 떠올린다. 늙어서야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늙은 호박은 무거운 몸을 매달고 어설픈 첫눈이 올 때까지 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늙어도 인기가 좋다. 아니 늙을수록 몸값이 비싸진다.  한때는 허리가 잘록하게 날씬하며 윤기 나게 빛나던 애호박 시절이 있었지만 묵묵히 견뎌온 시간의 가치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림을 공부할 때 애호박을 그려본 기억은 없었고 잘 익은 늙은 호박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몇 날 며칠을 그렸었다. 나는 늙은 호박이 견뎌낸 시간들까지도 화폭에 담고 싶어서 끙끙대며 고뇌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평가를 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은 행동거지가 가볍고 속이 텅텅 비어있다. 가벼운 것은 속이 비어있거나 썩어있기 때문이다. 홀로 꽃 피우고 살아온 호박 한덩이도 단 한순간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 오뉴월 땡볕과 비바람 된서리 맞으며 익어온 불같은 성정의 내공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늙은 호박은 오래 잘 익을수록 영양과 당분이 증가한다. 그 단맛으로 호박엿을 만들어서 특산품이 되기도 하고 팥과 새알을 넣고 끓인 호박죽은 특급호텔 뷔페식당에서도 인기가 좋다. 가난했던 시대에는 호박범벅으로 여러 명의 식구가 두레반에 모여 앉아서 허기를 채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서양에서는 할로윈데이에 잘 익은 호박으로 잭 랜턴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불을 밝힌다. 각양각색의 호박 등불을 들고 할로윈 축제에 참석을 한다. 늙은 호박의 화려한 변신이다.

늙은 호박은 친정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긴 시간 진통을 하고 출산한 딸을 위해서 늙은 호박을 싸 들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던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고인다. 그 옛날 교통편의도 좋지 않은데 그 먼 길을 무거운 호박을 이고 지고 오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효자식이다. 산후 붓기가 빠지지 않던 딸을 위해서 호박 속에 씨를 발라내고 그 속에 토종꿀을 넣고 푹 고아서 내린 물을 먹으며 기운을 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다시 기운을 내야 한다고 늘 다짐하게 된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화려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비바람과 된서리 맞으며 단단히 여물어가는 호박의 단맛처럼 잘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생의 연가(戀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에게 살아오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느냐고 물어오면, 나는 바로 지금! 늙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삶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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