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셋방살이 중이다. 육간과 생선가게 사이 냉장고 등짝에 붙어 있는 커다란 자석이 터전이다. 육간 주인이 횡렬로 대기 중인 우리 앞을 오 갈 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맞은 편에 세워진 거대한 톱이 달린 기계에 돼지 등뼈를 자르는 작업을 할 적에도 두 눈 질끈 감고 숨죽여야 했다. 종이 포대에 한가득 얼어붙은 무엇인가를 패대기칠 적엔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져 내릴 뻔했다. 튕겨 나가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 같아 어지러웠다.

주인장이 조기 새끼를 녹이려고 싱크대에 물을 채울 때 차가운 물을 우리 몸에도 끼얹는데 시원하다기보다 비린내가 올라온다. 이런 척박함 속에서도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텐인레스로 만들어진 생선회 뜨는 놈은 나의 두 배쯤 되는 기럭지를 자랑한다. 제주 은갈치처럼 날씬한 몸매가 일품이다. 그 옆의 육고기 자르는 놈도 그보다는 작다. 어찌 되었든 나보다는 길쭉하며 매끈하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부엌칼인 세 번째 녀석마저 그들과 같은 재질로 윤기가 좌르르 흐른다.

겨우 끝자리, 아니다. 이쪽에서 치면 첫 번째라 하겠다. 쓰임새 많은 그들에 비해 주인장의 손이 덜 가지만 나름대로 없어서는 안된다. 요즘 사람들은 밤새 공장에서 만들어 내놓는 먹을거리를 새벽녘에 받아먹는다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장통에 나와 요모조모 둘러보는 재미로 사는 이도 적지 않다. 덕분에 주인장이 나를 들어 오징어 내장을 빼내고 깨끗이 씻어 정갈하게 포장하여 진열해 놓고 가재미는 칼집까지 내어놓는다.

전으로 제사상에 올라가는 동태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한땀 한땀 포를 떴었지만 근래에는 공장에서 기계로 알맞게 떠와 덕분에 심간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이런 세상이 고맙지는 않다. 몸은 고단해도 일할 때 가장 생기가 돌기 때문이다.

생선가게에는 조개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장이 꼬막을 해금하려고 소금을 휘익 뿌리는데 하필이면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온몸에 버짐이 생기더니 제대로 흉터가 되었다. 등목이라도 해주면 마음이라도 개운하겠다. 천덕꾸러기가 된 걸까.

옛말해서 무엇 하나 싶지만 이래 봬도 저녁나절이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솜씨 자랑하던 날붙이다. 살아있는 생선의 목을 치는 내 등이 도톰한 것이 시쳇말로 근육질이 아닌가. 갈치를 자르거나 동태의 포를 뜨는 날 쪽은 얍상한 모습이 어찌나 농염한지 부인네들 눈길이 따라다녔다.

스테인레스 칼이야 뭐 기계로 대량 제작되어 생일이 같은 형제도 많고 잘 연마되어 내구성도 좋고 위생적으로도 견줄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만큼 오진 놈 있으랴. 고향이 대장간 아닌가. 풀무질을 견디고 망치로 두들겨 맞으며 오롯이 홀로 견디어 낸 날붙이.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 지루한 일상이다. 헌 데 오늘은 주인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숫돌을 찾는다. 손꼽아보니 추석 대목장을 준비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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