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희임 충북도 자치연수원 행정지원과 주무관
회의가 끝난 뒤, 팀원들이 회의록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발언권은 여전히 남성에게 먼저 돌아가고, 여성은 의견을 정리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회의 중 누군가가 커피를 내오거나 다과를 준비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여성 직원의 몫이 된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이런 장면은 우리가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여전히 차이를 경험하고 있다는 신호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육아시간을 사용할 때면 "엄마가 안 가고 아빠가 데리러 가네? 가정적인 아빠네."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겉보기에는 칭찬 같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무심한 말 한마디와 시선들이 쌓여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성평등의 체감은 더디게 따라오게 된다.
물론 우리 사회는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빠르게 확립해왔다. 육아휴직, 가족돌봄휴가, 유연근무제 등은 이제 선택이 아닌 권리로 자리잡았고, 공무원 사회에서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도 법으로 의무화되며,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도는 '틀'을 제공할 뿐, '문화'를 바꾸지는 못한다. 진정한 평등은 문서의 조항보다 일상 속 행동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회의에서 서로의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돌봄과 책임을 성별 구분 없이 나누며, 고정관념을 깨는 작은 실천이 쌓일 때 비로소 제도의 의미가 살아난다. 이런 점에서 직장 내 성인지 교육은 단순히 '의무 이수'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실제 근무 중 겪는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하고, 동료의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런 참여형 교육은 '성평등은 올바른 가치'라는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지금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은 깨달음과 실천이 이어질 때 조직 문화는 자연스럽게 평등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성평등 사회는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회의실, 사무실, 점심시간 속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노력을 '특별하다'고 말하기보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돌봄과 책임을 함께 나누고, 발언권을 동등하게 주고받으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할 때 직장은 더 건강하고 활기찬 공간이 된다.
성평등은 선택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의 실천이다. 직장 속 작은 변화는 결국 더 큰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