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은진 충북도 대변인실 주무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저서 '제2의 성'에서 성별이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제도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강조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불평등은 한 개인의 선택을 제한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양성평등은 여성과 남성이 똑같아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다름을 존중하되 그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공정한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사회 발전의 핵심을 모든 구성원의 '역량(capability)'을 확장하는 데 두었다.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 때, 사회는 더 건강하고 경쟁력 있게 성장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분명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교육 기회는 넓어졌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리천장, 경력 단절, 정치·경제 분야의 낮은 대표성 등은 현실의 과제로 남아 있다. 반대로 남성들 또한 전통적 성 역할에 얽매여 가족 내 돌봄과 책임을 충분히 분담하지 못하는 부담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사회 전체의 삶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에게도 사유할 공간과 경제적 자율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단지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성평등 사회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가정에서의 작은 존중, 직장에서의 공정한 인사와 평가, 지역사회에서의 동등한 참여 보장이 쌓여야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의 양성평등 실천은 큰 의미를 지닌다.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공정한 조직문화를 확립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근무 환경을 제공할 때, 이는 곧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성평등한 조직은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며, 주민들에게도 신뢰받는 행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육아와 돌봄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문화가 확산된다면 양성평등은 선언이 아닌 실천이 될 것이다.

양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도, 남성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조건이자 전제이다. 미래 세대가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양성평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우리가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면, 성별의 벽이 아닌 역량과 열정이 존중받는 진정한 지속 가능한 사회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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