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편리함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범죄도 낳고 있다. 특히 '로맨스스캠(Romance Scam)'이라 불리는 온라인 연애 사기가 AI 기술을 만나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서툰 번역이나 문법 오류로 쉽게 구별되던 사기 메시지가, 이제는 자연스러운 문장과 감정 표현으로 피해자를 현혹한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진짜 같은 사랑의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며, 결국 큰 금전적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2024년 5월, 한 여성이 자신을 일론 머스크라고 주장하는 인물에게 7천만 원을 송금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인물은 머스크의 사진과 합성된 여권 사진, 심지어 화성 신분증까지 제시하며 신뢰를 쌓았다. 이어 AI로 합성된 음성으로 "난 너를 사랑해"라는 고백을 전하며 감정적 유대를 강화했다. 피해자는 영상통화까지 했지만, 그 화면 역시 인공지능이 생성한 '딥페이크(Deepfake)'였다. 결국 그녀는 모든 것이 조작된 가짜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 남성은 SNS에서 알게 된 여성과 한 달간 친분을 쌓은 뒤, 그녀의 권유로 가상화폐 투자에 나섰다. 상대는 거래 플랫폼 링크를 보내주며 "이더리움을 사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도했다. 하지만 그 플랫폼은 조작된 가짜 사이트였다. 남성은 15만 달러 상당의 가상화폐를 잃었고, 이 사건은 '피그 부처링(pig butchering)'이라 불리는 로맨스스캠의 변형된 수법으로 기록됐다.
로맨스스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의심의 습관화'가 가장 중요하다. 감정적인 메시지나 빠른 친밀감 조성에는 반드시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영상통화나 음성 대화 요구를 회피한다면 사기 가능성이 높다. 금전 요구나 투자 제안이 등장할 경우에는 반드시 가족이나 지인, 또는 금융·수사기관에 상담을 요청해야 한다.
AI 기반 합성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정을 이용한 범죄는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결국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기술보다 앞선 경각심과 신중함이다. '진짜 사랑'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