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미선 기상청장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가을을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가을은 꽃으로 화려함을 수놓는 봄과 같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나뭇잎의 라스트 댄스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

기상청에서는 이처럼 아름다운 가을철 단풍을 즐기고자 산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전국 21개 유명산의 단풍 시작일과 절정일을 관측하여 제공하고 있다. 단풍의 시작일은 정상에서부터 20%의 면적이, 절정일은 정상에서부터 80%의 면적이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충북에서는 충주시의 월악산과 보은군의 속리산에서 단풍 관측이 수행되고 있다. 월악산의 평년(1991~2020년, 30년간 평균) 단풍 시작일은 10월 12일, 절정일은 10월 24일이며, 속리산의 평년 단풍 시작일과 절정일은 각각 10월 14일과 10월 26일이다. 월악산보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 속리산의 단풍 시작일과 절정일이 2일 늦은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위도대에 따라 단풍 시작일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단풍 시작일이 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단풍은 나뭇잎에서 붉은색 안토시아닌 색소가 생성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일최저기온이 5℃ 이하의 조건에서 붉은색 안토시아닌이 생성된다. 따라서 위도대가 낮아 월악산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속리산의 단풍이 늦게 시작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월악산의 단풍 시작일은 평균 10월 17일로 평년보다 5일 늦었으며, 속리산의 단풍 시작일도 10월 21일로 평년보다 7일 늦었다. 특히, 기상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후 평균기온과 평균 최저기온이 가장 높았던 작년 월악산의 단풍 시작일은 10월 21일로 평년 대비 9일 늦었고, 속리산은 10월 25일로 평년 대비 11일 늦었다.

단풍의 시작이 늦어지고 있는 경향은 가을의 시작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상학적으로 가을은 일평균기온이 20℃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을 기준으로 시작된다. 이 기준에 따라 과거 30년(1912~1940년)의 평균 가을 시작일은 9월 17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30년(1991~2020년)의 평균 가을 시작일은 9월 26일로 9일 늦어졌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될 경우를 가정한 기후변화시나리오 SSP5-8.5에 따르면, 다가올 2090년대(2091~2100년) 가을의 시작은 10월 19일로 지금보다 상당히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풍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넘어,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늦어지는 단풍은 결코 자연의 변덕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며, 지금 우리가 행동해야 할 이유이다.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과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는 단풍의 시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계절을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과 함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탄소 배출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일, 일상 속 에너지 절약, 산림 보호가 곧 우리의 단풍과 지구를 기후위기로부터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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