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안전이야기] 동중영 정치학박사·한국경비협회 중앙회장
최근 사회 곳곳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용어는 상대방의 심리와 인식을 조종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가해자에게 종속되도록 만드는 정신적 지배 행위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의견 차이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는 자신의 판단력과 자존감을 잃고, 가해자가 만들어 놓은 왜곡된 현실 속에 갇히게 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1938년 영국의 연극 가스라이트(Gas Light)에서 유래했다. 작품 속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살짝 어둡게 만들고, 아내가 그 사실을 지적하면 “착각이다”라며 부인한다. 반복된 조작과 거짓 속에서 아내는 결국 자신의 정신을 의심하게 된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교묘하고, 피해자는 스스로 피해를 인식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가스라이팅은 연인 관계뿐 아니라 가족, 직장, 등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라면 어느 조직이든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사가 부하직원의 실수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라고 반복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며 “그건 네가 잘못 기억한 거야”라고 단정짓는 행동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이러한 언행이 지속되면 상대는 점차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관계의 주도권은 가해자에게 완전히 넘어간다. 가스라이팅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탓하며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상대가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이다”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왜곡은 피해자가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깊은 상처와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의 말 때문에 불편하거나 억압감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의 객관적 시선은 왜곡된 관계를 깨닫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셋째, 건강한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물리적·정서적 거리를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스라이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하게 된지 이미 오래다. 조직 내 권력 구조, 가정 내 위계, 학교나 온라인 공간 등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조작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진정한 관계란 상대를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대신,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