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금속 결합 성공
생체분자 기능 확장 시도
전자·반응성 정밀 제어
차세대 촉매 기반 확보
몸속에서 에너지 흐름을 조율하는 비타민 B2(리보플라빈)가 과학자의 손을 거치자 전혀 다른 가능성을 지닌 물질로 다시 태어났다.
KAIST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자연계에서 구현되지 않던 '금속 결합 플라빈'을 세계 최초로 합성하며 생명화학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출발점을 만들었다.
리보플라빈은 음식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전자를 옮기는 핵심 보조효소다. 하지만 이 분자는 질소와 산소가 복잡하게 얽힌 고리 구조를 갖고 있어 금속이 선택적으로 붙을 틈이 거의 없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난제였다.
KAIST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과 IBS 권성연 박사 연구팀은 이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플라빈 내부에 금속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새로 설계하고, 그 자리를 잡아주는 리간드(ligand) 구조를 미세하게 배치해 금속화학의 원리를 생체분자에 이식하는 시도를 진행했다. 그 결과 금속 주변의 전자 분포와 공간적 환경을 원하는 수준까지 조절할 수 있는 안정적 플라빈-금속 결합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기존 분자 결합 연구의 한계를 확장하며, 새로운 반응 원리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 효소가 보여주는 촉매 기능에 금속의 반응 조절 능력까지 더한 '인공 효소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에너지 전환, 환경 정화, 의약 화학 등 기존 효소가 다루기 어려웠던 분야에서 정밀한 반응 제어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백윤정 교수는 "생체 분자를 금속화학의 구성 요소로 확장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차세대 촉매와 에너지 변환 소재 연구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연구에는 KAIST 니투 싱(Neetu Singh) 박사와 임하늘 석박사통합과정 학생이 공동 1저자로 참여했다. 성과는 미국화학회 국제 학술지 Inorganic Chemistry 11월 5일 자에 표지 논문으로 실렸으며, ACS가 발행하는 90여 개 학술지 전체에서 하루 한 편을 선정하는 'ACS Editors' Choice'에도 올랐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기초연구사업의 '우수신진연구'와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개발사업의 지원을 통해 수행됐다. /대전=이한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