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박재명 수필가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기온은 하루 만에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은행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으로 길은 온통 노랗게 물들였다. 여전히 가지에 달린 잎들도 아직은 아름답다. 주변에 울긋불긋 단풍들과 대비를 이루며, 어떤 나무는 주황색으로 또 어떤 나무 붉게 물들었다. 공기도 물이 든 듯 노랗고 붉게 물들어 사람과 나무와 마을 사이로 흘러 간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는 푸른 대로, 단풍으로 물드는 나무는 제각각의 색으로 물든 채 삶의 한 단락에서 빛을 발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저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꾸미는 계절! 가을이다.

​ 가을 나무들의 변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과 기쁨과 감탄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 말 없이 묵언수행으로 여러 계절을 보낸 저 나무들의 오늘 모습은 그간 쌓아 올린 공덕을 조건없이 베풀고 있는 모습이리라. 나무는 나무대로, 돌은 돌대로,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모두가 공덕을 베풀고 살아가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롭고 감사함을 일깨워 주는 계절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공덕을 베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는 데로 순응하며 저절로 발산되는 겸손함이다. 그들이 공덕을 베푼다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보는 이들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지만 감동을 선사한다.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절제된 내면의 수양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자연스럽다'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 '자기가 닦은 공덕을 자신이나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깨닫도록 함' 이 과정을 '회향'이라고 한단다. 그들이 그렇게 자기 몸을 태워 회향하는데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만물의 영장 인간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향이라는 단어로 그 의미를 생각해 보니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저절로 든다. 자연을 닮은 삶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살아가는 세상이 녹녹치 않아 물욕을 무시할 수 없는 삶의 길이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나게 높게 세운 한계치로 예기치 않는 불상사가 끊일 날이 없는 것이 세상사이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 단풍 숲을 바라보니 문득 ‘회향’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해 준다. 그래서 되돌아보면 나는 내가 쌓은 공덕으로 누구에게 베풀어 깨닫게 한 적이 있었는가? 단 한 번도 그랬으리란 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 어느덧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었다. 눈발이 휘날리며 흰 세상을 만드는 저 눈발은 가을도 모자라 겨울에도 회향을 베풀고 있는 중이다. 계절로 보면, 가을이나 겨울이면 자연이 가르쳐 주는 회향의 의미가 더 진해진다. 자연은 말없이 감동을 선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베풀 수 있는 공덕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아비규환의 세상을 보내고 있다. 독이 잔뜩 묻어 있는 말들이 공중파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참 대조적인 부끄러움이다. 필자 역시 태어나 뚜렷하게 베푸는 덕을 쌓은 기억이 없으니, 이 또한 자연에 비추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단풍 하나, 낙엽 하나, 찬 바람에 날리는 눈보라를 보니, 다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준다. 떨어진 낙엽 한 장을 주워 들고 내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회향의 뜻을 따르리라 다짐해 본다. 회향! 이 단어 하나가 마지막 삶의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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