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영 증평군수 

기후위기는 국제 협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파리협정, UNFCCC, COP28 등에서 수차례 합의가 이뤄졌지만, 현장의 실행은 여전히 더디다. 자연현상과 얽혀 있는 복잡성도 있지만,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과 동기 부여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정부가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실천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월 필자는 대한민국 지방정부를 대표해 중국 장쑤성 옌청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6회 한·중·일 지방정부 교류회의에 참석했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일본 지방자치단체국제화협회,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등 한·중·일 주요 인사 5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C+ESG 리더 증평 그린딜'을 주제로 증평군의 정책을 소개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그린존 조성, 20분 도시, 스마트 미래 농업이라는 네 가지 전략을 제시하며, 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탄소를 줄이는 증평형 그린딜의 방향을 공유했다.

그 가운데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잡초와의 동행'이라는 새로운 시도였다. 우리는 그동안 하천변과 도로변, 도심 곳곳의 잡초를 제거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잡초는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자라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자, 탄소를 흡수하는 자연 기반의 그린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증평은 하천변과 도로변의 잡초를 초지화하고, 도심의 잡초를 생태적으로 관리하는 '생활밀착형 집초숲'을 조성하려 한다. 주민이 참여하는 연구·제도화 작업도 함께 추진 중이다.

전환의 시대에 행정은 이처럼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행정의 기본 원칙은 더욱 견고해야 한다. 법률에 근거해 법률에 적합하게 행정을 수행하는 법치행정,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는 신뢰보호의 원칙,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비례·과잉금지의 원칙, 인허가와 전혀 관련 없는 조건을 붙이지 않는 부당결부금지원칙 등은 공무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행정은 단순한 서류 처리나 예산 집행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 변화를 읽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주민의 불안과 요구를 파악해 해법을 설계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 치열한 고민이 쌓여야만 가능한 고차원의 능력을 요구한다. 전환의 시대는 실력과 능력은 물론, 주민을 섬길 줄 아는 정성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갖춘 전천후 인격을 행정에 요구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이러한 품격을 갖출 때, 비로소 인구 위기와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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