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송남용 심리상담사 

13세 소녀 엠마가 프로이트를 찾아왔다. 엠마가 지닌 증상은 ‘가게 공포증’이다. 엠마는 가게가 눈에 띄거나, 들어갈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았고, 물건을 고르다가도 손님들이 빠져나가면 놀라서 가게를 뛰쳐나오곤 했다.

프로이트는 엠마에게 공포증이 생기기 직전의 상황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엠마는 몇 달 전 옷을 사러 한 가게에 들렀다.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 두 명만이 있었다. 엠마는 옷을 고르다 두 점원이 엠마가 입은 옷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엠마는 그 순간 질겁하여 문을 박차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고, 그 후 2주 동안 앓으며 몸져누웠다.

프로이트는 공포증의 근본 원인이 과거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와 관련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기억해보라고 격려했다. 엠마는 여덟 살 무렵 사탕 가게에 갔을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당시 가게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고 중년 남자인 가게 주인만 있었다. 엠마는 맛있는 사탕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엠마가 사탕을 고르던 중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을 느꼈다. 보니 가게 주인이었다. 주인은 웃으며 ‘어느 사탕이 맛있을까?’ 하면서 엠마의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그러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성기도 만졌다. 하지만 엠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열흘 후에는 다시 그 가게에 가기까지 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는 외적 자극에다 내적 충격(사후 해석으로 인한 충격)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고, 엠마의 가게 공포증 역시 그 같은 과정을 거쳐 발생했을 것으로 보았다.

즉 엠마의 가게 공포증의 외적 자극은 8살 때 사탕 가게 아저씨의 성추행이었고, 내적 충격은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 그것이 성추행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13살 때 가게의 남자 점원이 히죽히죽 웃을 때(8살 때의 가게 주인도 웃으며 성추행함) 8살 때의 사건을 성추행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둘이 결합되어 가게 공포증이 생겼다는 것이다(프로이트와의 대화 책, 참고).

엠마의 가게 공포증을 정신분석학적 측면이 아닌 파블로프의 연합학습(고전적 조건형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엠마에게 가게 공포증이 생긴 것은 성추행이 가게와 짝(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추행을 웃으면서 했기 때문에 이상야릇하게 웃는 것도 또 남성이 중년 남성이었기 때문에 중년 남성에게도 그리고 성추행이 사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탕을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 또는 공포감이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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