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열심히 먹어도 감기 몸살 기운이 보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쉴 틈을 얻지 못해서 일게다. 지친 몸에 생각도 빛을 잃고 힘들어하는 내 귀를 쫑긋 세우는 멘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은 보폭을 좁게 해서 거북이처럼 올라야 한다. 정상을 바라보지 말고 발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 새 정상에 올라와 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보폭을 좁게 해서 걷는 것이 지치지 않고 잘 걷는 비법이었다.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고 보폭도 넓은 편인 나는 생활도 그렇게 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쉽게 지치고 힘겨워하며 사나 보다.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해야 될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다가 힘이 들면 잠시 생각한다. '그래, 보폭을 좁게 하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자. 남 의식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하자.' 보폭을 좁게 하는 건 마음을 비우는 것이기도 한 걸까.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시침이 움직이는 속도는 예나 이제나 같을 텐데 세월이 어찌 그리 빠른지 모르겠다. 벌써 한 해의 반을 향해 달력도 행진하고 있다. 토끼가 되어 세월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허둥대지 말아야겠다. 선을 행하다 지쳐 낙심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새 하루를 맞아 그저 내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영원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나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 박순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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