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명 시인.
▲  정진명 시인.

‘오근장’은 한자로 ‘梧根場’입니다. 오근장역이 있어서 청주역, 증평역, 충주역, 제천역 같은 이름과 견주면 정말 한눈에 다르다는 느낌이 들죠. ‘장’은 장이 서던 곳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라는 뜻이죠. 문제는 ‘오근’입니다. 그대로 풀어보면 ‘오동나무 뿌리’라는 뜻인데, 이게 뭘까요?

먼저, 오근의 ‘根’은 뿌리인데, 옛말은 ‘불휘’(『용비어천가』)였습니다. 과연 나무뿌리를 가리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벌판의 ‘벌’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오역이죠. 왜 ‘벌’이냐고요. 오근장역에 서면 건너편 오창까지 너른 들이 펼쳐집니다. 그러니 ‘벌, 불, 부리’라고 할 밖에요.

그러면 오(梧)는 무엇일까요? 오동나무를 뜻합니다. 그러면 오근은 ‘오동벌, 오동부리’가 됩니다. 根이 뿌리가 아니라 벌판을 뜻하는 것처럼, 梧도 오동나무를 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일까요? 답은 그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까치내에 있습니다. 까치내(鵲川)의 ‘까치’는 옛말로 ‘아찬’이고, 이것은 한자표기로 아단(阿旦)이라고 적습니다. 단양의 아단산성이 그것입니다. 

을 우리 생활에서 낯익은 ‘오동’으로 듣고 쓴 것입니다.

따라서 오동벌은 동쪽에서 흘러오는 까치내(鵲川) 주변에 펼쳐진 들을 뜻하는 것으로, ‘아찬벌, 아단벌’이라고 했다가 ‘오동벌’로 굳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문으로 표기하자니 오근(梧根)으로 쓴 것입니다.

또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오동나무’의 옛말은 ‘머귀나무’입니다. 오동을 머귀로 풀면 오근(梧根)은 ‘머귓벌, 먹벌’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 됩니다. ‘머귀’와 관련된 이름은 여럿입니다. ‘오근장, 오창, 오근진’은 한자로 기록된 지명이고, 내수의 ‘먹뱅이’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뱅이는 ‘배기, 받이’와 같이 야트막한 언덕에 놓인 마을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창(梧倉)은 『동국여지승람』에 ‘오근창(梧根倉)’으로 기록되었는데, 오창 너른 들에서 생기는 곡식을 저장하던 관청의 창고가 있던 곳임을 말해주는 지명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오근(梧根)은 ‘먹벌’입니다.

‘먹’이 오동나무로 번역된 용례가 회인에 있습니다. 피반령을 넘어가면 처음 만나는 동네가 오동리입니다. 오동리의 원래 이름은 ‘먹울’입니다. ‘울’은 ‘골’에서 기역이 떨어져나간 모양이죠. ‘황새울’은 ‘황새골’이라는 뜻입니다. 이 먹울을 일제강점기 때 면서기가 간단히 ‘오동리’로 번안한 것이죠. 오동의 옛말이 ‘머귀’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로 옆의 내북면에는 ‘머그남골(법주리)’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머귀나무골’이겠죠? 회인의 ‘먹울’은 먹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곳은 황철석 지대이기 때문에 돌이 뗏장처럼 얇게 떠지는 납작 돌이어서 기와 대신 쓰기도 했습니다. ‘먹울’은 우뚝 솟은 산(피반령)의 옆구리에 막힌 골짜기 동네라는 뜻입니다. 뜻은 ‘막힌 골, 막골’이죠.

만약에 ‘먹뱅이’에 먹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면 위에서 말한 ‘먹벌’의 의미는 한결 또렷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먹과 관련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이렇게 살짝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오동벌과 먹벌 중에서 어느 쪽이 확실한 답인지는 판단하기 힘듭니다. 다른 분의 연구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