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 다목적댐 준공

·水害(·수해) 조절과 發電(발전)을 겸하게 될 昭陽江(소양강) 多目的(다목적)竣工式(준공식)15일 상오 11江原道(강원도) 昭陽江 댐 현장에서 金種泌(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 張禮準(장예준) 건설부 장관 등 內外貴賓(내외귀빈) 多數(다수)現地住民(현지주민)들이 參席(참석)한 가운데 盛大(성대)擧行(거행)됐다.

着工(착공) 6() 6개월 만에 完工(완공)을 본 昭陽江 多目的댐은 政府(정부)4大江流域(4대강유역) 綜合開發計劃(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추진한 東洋(동양) 最大(최대) 규모의 ()력댐으로 높이가 123미터에 길이가 530미터 총저수량이 29억톤에 이르며 시설용량 20만 킬로와트의 發電施設(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工費(공비) 26978백만원이 投入(투입)된 소양강댐은 洪水(홍수) 조절과 用水(용수) 및 전력공급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소양강다목적댐의 사업 효과는 다음과 같다.

洪水 조절=年間(연간) 5t으로 평균 70의 한강 수위를 조절 用水 공급=首都圈(수도권)을 비롯, 한강 유역의 ·工業(·공업) 生活(생활)용수 1213백만를 공급 발전=시설용량 20만 키로왓트로 年間 353백만KWH의 전력 공급 관광 효과=댐 건설에 따라 새로이 형성된 호수가 64나 되며 春川(춘천)內雪嶽(내설악)을 연결하며 지역 관광 개발에 기여. <8816·19731016일자 1>

 

초등학생 시절, 우리나라에 동양에서 가장 큰 댐이 건설됐다고 설명하던 선생님의 흥분한 어조가 떠오른다. 그 큰 규모의 공사를 이전엔 본 적이 없었다.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보도됐고, 어린 우리들의 어깨도 절로 으쓱해졌다.

소양강 댐이 착공된 건 1967, 6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7310월에 완공됐다. 높이 123m, 길이 530m의 규모를 자랑한다. 동양 최대의 규모라고. 한국 최초의 중앙차수벽식 사력 댐으로, 중앙에 진흙으로 심지를 박고 그 양쪽을 모래와 자갈만으로 쌓아올렸다.

소양강수력발전소는 연간 35300kW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완공 당시의 발전용량은 한국 총수력발전용량의 1/3에 해당됐는데, 당시 세계적인 에너지 파동으로 큰 어려움에 놓였던 국내 전력난 해소에 도움을 줬다.

이 댐에서 발전된 용수는 하류에 있는 의암·청평·팔당 발전소에서도 이용된다.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 70, 총저수량 29t, 유역면적 2,703에 이른다. 이 댐은 세계 4위의 규모로서 동양 최대이며, 댐 건설을 통해 축척된 기술은 한국의 해외건설 진출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나라 산업 역군들은 무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듯하다.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지하철 1호선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3대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처음 도안은 도쿄대 출신으로 이뤄져 세계 유수의 댐을 건설해온 일본공영에 의해 콘크리트중력식으로 설계됐으나, 정주영 회장 현대건설의 전갑원 기사가 비용을 3분의 1로 낮추면서도 훨씬 튼튼한 사력식 공법을 제안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장 전문가인 전씨와 장시간의 독대 끝에 정주영의 편을 들어줬고, 19672241차공사가 현대건설로 결정됐다고 한다./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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