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불법(佛法)은 가장 정심(精深)하며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이다. 만약 이 한 영역을 열려면 반드시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주의 진상(眞相)은 영원히 인류의 신화가 될 것이며 속인은 영원히 자신의 우매한 견해로 그어놓은 틀 속에서 기어 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종교인가? 철학인가? 이것은 단지 ‘현대화된 불교학자’의 인식일 뿐이다. 그들은 이론만 배울 뿐 그것들을 철학범주의 것으로 여기고 비판적으로 배우면서 이른바 연구를 한다. 사실 ‘불법’은 단지 경서(輕書)중의 고만한 것만이 아니며 그런 것은 다만 ‘불법’의 초급층차(初級層次)의 법일 따름이다.

‘불법’은 입자(粒子), 분자(分子)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더욱 작은 것에서 더욱 큰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 오묘한 비밀을 꿰뚫어 보며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 그는 우주의 특성 진(眞), 선(善), 인(忍)의 부동(不同)한 층차의 부동한 논술로써 다시 말해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법(法)이다.

현재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단지 우주의 오묘한 비밀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불법’중의 구체적인 현상을 제기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이미 전자시대며, 과학이 매우 발달했고 우주선이 다른 별에까지 날아갔는데 아직도 이렇게 낡은 미신을 말하는가?” 라고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두뇌와는 견줄 수 없으며 사람의 두뇌는 지금도 여전히 투철하게 연구해 내지 못하는 미스터리다.

우주선이 아무리 높이 난다 해도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이 물질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 인류의 지식으로 요해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극히 얕고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하며 진정하게 우주의 진상을 인식하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일부 사람들이 심지어 객관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사실을 감히 정시(正視)하지 못하고 감히 건드리지 못하며 감히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보수적이어서 전통적인 관념을 개변하여 사유(思維)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시공(時空), 인체의 미스터리를 완전히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법’뿐인바, 그는 진정한 선과 악,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있으며 일체 그릇된 견해를 타파하고 올바른 견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현재 인류과학의 지도사상은 그것에 대한 발전 연구를 단지 물질세계 내에 국한하여 일종의 사물이 인식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연구하는 이런 갈래 길을 걸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이 공간 중에서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또 우리 이 물질 공간에 반영되어 오는 현상, 확실하고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분명치 않은 현상으로 여긴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억지로 이유를 찾아 자연현상이라고 하고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은 마음을 어기고 일률로 미신이란 큰 모자를 씌우며 추구가 진지하지 못한 사람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며 회피한다. 만약 인류가 자신과 우주를 새롭게 인식하고 굳어진 관념을 개별 할 수 있으면 인류에게는 비약(飛躍)이 있을 것이다.

불법(佛法)은 인류를 위해 무량무제(無量無際)한 세계를 철저하게 밝힐 수 있다. 천고 이래 인류, 물질이 존재하는 각개 공간, 생명과 전체 우주를 원만(圓滿)하고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법(佛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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