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지난달 라포르짜 오페라단은 청주예술의전당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공연했다. 연말 행사답게 많은 분이 관람해 주시면서 크리스마스에 시작되는 이야기의 감동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라보엠은 이탈리아어로 보헤미안들이라는 의미이다.

보헤미안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고, 일정한 수입이 없는 예술가나 작가들 또는 세상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오페라는 이런 특징을 가진 가난한 시인, 음악가, 화가, 철학자의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라보엠처럼 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에 이들의 자유분방한 세계관에 들어가 함께 즐거움을 느껴보는 시간이어서 공연은 내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이브의 차가운 날씨에도 난로를 피울 땔감조차 없자, 시인인 로돌포는 어렵게 쓴 자신의 원고 뭉치를 난로에 넣어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 즐긴다. 제 1막 원고가 불에 타자, “와 화끈한걸?”, 제 2막의 원고도 난로에 던지고 “엄청난 감동이 몰려오는군.” 등등 환성을 지른다.

음악가 쇼나드가 연주를 해서 번 돈으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기 위해 나가지만, 로돌포는 태운 원고 대신 쓸 글 때문에 집에 잠시 머문다. 그때 초에 붙일 불을 얻기 위해 방문한 가난한 여인 미미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로돌포가 미미의 손을 잡고 부른 아리아 ‘그대의 찬 손’, 이에 화답하는 미미의 ‘나는 미미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둘이 사랑에 빠져 어두운 방안을 비추는 달빛 아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오 귀여운 처녀’ 등은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하다.

하지만 그녀는 폐병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랑의 시작은 불꽃 같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다. 로돌포는 미미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미미는 그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로돌포는 미미가 다른 남자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괴롭히고, 돈 많은 사람과 사귀라고 미미를 쫒아내었다. 그러자 미미는 화가 마르첼로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마르첼로가 로돌포를 만나자, 그는 미미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병이 깊어 곧 죽을 것이고, 자신은 미미를 치료할 돈이 없으니, 미미가 다른 남자를 찾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단장으로 세 번의 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이 대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아픈데, 자신이 해줄 것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쫒아내는 것이 사랑인가? 라보엠이라는 제목처럼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서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구속당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일까?

로돌포의 생각을 알게 된 미미는 결국 헤어지지만, 얼마 후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 애인을 찾아온다. 로돌포가 그녀를 발견하고 침대에 눕히자 그녀는 자신이 여기 있어도 좋은지 물어본다. 그런 질문을 하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주변 사람들이 아픈 미미를 돌보기 위해 부산스러운 동안,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미미가 죽은 것을 알고 통곡하는 로돌포를 보면서 그는 진정으로 가슴이 아팠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가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슬프고도 엉뚱한 보헤미안 사고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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