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황종환 중국 칭화대학 SCE 한국캠퍼스 교수ㆍ한국자산관리방송 논설실장

지난 주말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한강변을 바라보니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에서 완연한 봄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린다. 파릇파릇한 맛이 덜 느껴지는 풀과 나무들은 머지않아 이곳저곳에서 초록의 향기를 물씬 풍기지 않을까 싶다. 아직 초록빛으로 선명하지 않은 나무들이 연록의 새순이 돋아나면서 순수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치 갓 태어난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며 안아준다.

남쪽 화엄사 각황전 옆 매화나무에 진한 검붉은 홍매화가 해운대 동백섬에 동백꽃이 화려하게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을 견뎌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절개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며칠 전 코엑스에서 바라본 봉은사 대웅전 옆 매화나무에서도 진분홍색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매화나무 아래에서 긴 호흡으로 향기에 취하는 호사를 누렸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찰에서 피어난 꽃들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의 텅 빈 가슴을 채워주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코엑스에 있는 직장에 근무할 때 종종 절을 찾아 산책하며 일상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예상치 못한 꽃샘추위로 벚꽃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해 각종 축제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순간 양재천변 산책로에 있는 벚꽃들이 궁금하여 산책로에 나가 벚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혔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꽃망울을 터뜨릴 기미가 보여 금방이라도 활짝 필 것 같아 다행스럽다. 먼저 꽃이 피는 희망을 상징하는 개나리꽃이 부지불식간 주변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꽃들은 화려한 자태를 맘껏 발산하지도 못하고 조만간 꽃비가 되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갈 것이다.

환절기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이다. 입춘과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봄바람과 함께 환절기가 다가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시기에 일교차가 크고 온도 적응력이 떨어져서 자주 피로하고 감기에 걸리기 쉽다. 필자는 환절기가 되면 유난히 맥을 추지 못하는 편이다. 평소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하지만 통과의례처럼 어김없이 감기 몸살을 앓는다. 가족들은 태어나서 모유를 먹지 못해 내성이 부족하여 환절기를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혼 초기 아내는 환자와 결혼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다행히 사십대 중반부터 시작한 마라톤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세월을 견뎌냈으니 감사할 일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도를 넘을 정도로 치열하게 서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불편함과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각종 선거가 환절기마냥 반복적으로 다가와서 꿈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고통과 절망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입신양명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불편하다. 건전한 정책 경쟁보다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를 찾아내어 공격하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부 정치인들의 비열한 모습과 어렵고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고 통곡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룬다.

봄소식은 매화가 벚꽃보다 일찍 알려준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말은 김초희 감독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나오는 대사다. 노년에 글을 배운 집주인 할머니가 쓴 첫 시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꽃이 찾아온다. 죽은 듯 조용했던 나뭇가지에 새순이 움트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계절이 지나가면 꽃은 시들고 다시 그 자리에 다른 꽃이 핀다. 그리고 또 꽃은 지고 어김없이 다시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한번 떠나버린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주 취미 활동을 함께 하는 동호회 회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70대 초반의 여성회원이 최근 가까운 친구와 함께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여행이 끝난 후 사소한 문제들이 쌓여서인지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이전에도 다른 사람과 비슷한 일이 있어서 더욱 조심하고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제 다른 사람과 여행하는 일이 두렵기도 하고 고민이라고 말했다. 하물며 가족들과 여행을 가더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을 마치는 일이 어려운데 타인과 긴 시간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에는 소유와 집착과 탐욕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놓아버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등산을 할 때 정상을 보지 말고 걸으라고 한다. 한 걸음 한걸음 밑바닥을 디디고 올라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을 오른다는 목적만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힘들어지고 즐거움은 없어진다. 등산로 주변 등 굽은 소나무의 아름다운 곡선이나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고, 멀리 산 아래 풍경을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정상을 올라가는 것보다 올라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것에 관심을 갖지만, 신은 노력한 과정을 중요시 한다는 말이 가슴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최근 총선에 출마한 일부 정치인들이 지난날 삶의 과정에서 했던 일이나 말이 문제가 되어 낙마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이를 통해 목적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몸부림치며 세월을 붙잡을지라도 장강의 물결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세월을 비켜갈 수 없다. 계절이 바뀌면 꽃이 피었던 자리에 다시 다른 꽃이 피어난다. 떠나갔던 꽃이 다시 꽃으로 돌아오는 봄이 되면 떠나간 사람도 꽃처럼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살아 숨 쉬는 순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우주 대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는 소중한 봄날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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