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04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충남 서산에 있는 토지를 4억 9천만 원에 구입했다. 매매대금 4억 9천만 원 중 A씨가 1억 9천만 원을, 피해자 B씨를 포함하여 4명이 3억 원을 각 부담했고, 소유권 등기는 곧바로 A씨 앞으로 해 두었다.

그런데 A씨가 2007년경 제3자로부터 금전을 빌리면서 피해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고, 그 후 다른 금융기관에 또 다른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이 경우 A씨는 피해자들과의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할까?

종전에는 A씨는 횡령죄로 처벌을 받아야했으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 5. 19.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횡령죄가 아니라고 보고 횡령죄를 인정했던 종전의 판례를 모두 폐기했다.

 

대법원이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A씨에 대하여 무죄로 판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형법상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타인의 신임관계에 반해서 그 재물을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명의신탁약정과 명의신탁으로 인한 부동산 물권변동은 모두 무효라고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명의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가 되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되므로,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진 적이 없게 되어 명의수탁자는 ‘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은 A씨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명의신탁에는 여러 형태가 있기 때문에 모든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가 횡령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각각의 명의신탁의 유형과 횡령죄 성립 여부를 살펴보자.

첫째,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등기가 되어 있던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명의신탁하는 경우로서 ‘2자간 명의신탁’이라 한다. 이때 명의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처분할 경우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명의신탁약정과 명의수탁자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무효이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그대로 명의신탁자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명의수탁자가 직접 매매당사자가 되어서 매도인과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그 명의로 소유권등기를 마치는 경우로서 ‘계약명의신탁’이라 한다. 계약명의신탁은 매도인이 명의신탁의 존재를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로 나눠진다. 전자의 경우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진 적이 없게 되므로 명의수탁자가 그 부동산을 처분하더라도 사례의 경우처럼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 매도인이 명의신탁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에 의하여 명의수탁자는 부동산의 소유권을 완벽하게 취득하게 되므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 즉, 명의수탁자는 자신의 부동산을 처분하는 결과가 되므로 횡령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계약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어느 경우에 의하더라도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가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셋째, 명의신탁자가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등기명의만 명의수탁자에게 이전하는 경우로서 ‘3자간 명의신탁’ 또는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이라 하고,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2자간 명의신탁 외의 다른 유형의 명의신탁에서는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사실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명의수탁자가 마음대로 신탁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근저당권 등을 설정해주더라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고, 명의신탁자는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를 존중해 명의신탁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를 줄임과 동시에 민사상 소유권 법리와 형법상 횡령죄가 보호하는 신탁부동산의 소유자 개념을 통일적으로 해석한 지극히 마땅한 판결이라 할 것이다.

한편,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이 무효라 하더라도 그 무효를 가지고 제3자에게 대항할 수는 없다. 즉, 사례에서 근저당권자는 명의수탁자인 A씨뿐만 아니라 명의신탁자인 피해자들이나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근저당권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다.

특히, 2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의 처분행위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명의수탁자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이나 근저당권자도 명의신탁자에게 유효를 주장할 수 있으므로 명의신탁자는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거나 근저당권자의 채권최고액에 상당하는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다행히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의 소유권을 온전하게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가액의 30% 이내의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명의신탁자뿐만 아니라 명의수탁자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의신탁은 더 이상 절세 또는 강제집행 면탈 등의 재테크의 방편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재산과 명예를 모두 잃게 되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 법무법인 이강 박승기 변호사.

<약력>

△단국대학원 부동산건설학과 재학 중.

△사법연수원 제41기 수료

△법무법인 이강

△㈜굿앤굿 자문변호사.

△전국 신문사협회 자문변호사.

△㈜삼덕금속, 제이디, 에오니스 자문변호사.

△한국대학야구연맹 고문변호사

△굿앤굿 실전자산설계 아카데미 법률담당 강사.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