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천 입시학원장

[정우천 입시학원장] 변화 없이 웅크리고 있어 보이던 마른나무 가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물기가 오르고 새움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봄은 그렇게 또 돌아왔다. 멀리 남쪽에서부터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봄은 그렇게 매일 어린아이 걸음 속도인 시속 20km 남짓의 속도로 꽃을 피우며 북상한다.

봄이 오면 많은 식물은 다투어 꽃을 피운다. 대부분 꽃은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이고 그러려면 봄에 꽃을 피워야 여유 있게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서두르는 것일 거다. 조금 빠르거니 늦거니 피어오르며 눈을 즐겁게 하는 봄꽃은 참으로 다채롭다. 꽃은 그 종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고, 같은 종이라도 위치와 환경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다. 벚꽃의 개화 지도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 시기이다.

겨우내 마른 가지로 있을 땐 나무속 어디에 봄꽃을 피울 조짐을 숨기고 있었을까 싶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는 꽃은 참으로 신비롭다. 꽃나무 속에 내재해있던 생체정보의 설계가 꽃이 피게 하는 걸까? 아니면 여건이 되면 그 환경이 꽃나무를 자극해 꽃이 피게 하는 걸까? 마치 타고난 유전자가 더 중요할까 아니면 환경에 의해 능력은 계발될 수 있을까 하는 교육계의 영원한 숙제와도 같다. 하긴 식물의 생체정보와 적합한 환경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꽃이 핀다고 말하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어찌 됐든 때가 오면 잊지 않고 찾아주는 봄꽃은 언제나 정겹다. 우리가 사과를 보고 그 속에 씨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쉽지만, 씨를 보고 나중 나무의 모습과 사과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이렇듯 생명의 진행은 참으로 경이롭고 인간의 헤아림을 넘어선다.

만약 봄꽃에도 인간적인 생각이 있다면, 아직 피지 않은 꽃은 먼저 핀 꽃을 축하하면서도 스스로 그만큼의 꽃을 피우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이 있을 것이고, 먼저 핀 꽃은 아직 피지 않은 꽃이 나중에 자신보다 더 화려한 꽃을 피우면 어쩌지 하며 은근히 걱정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사의 흥망성쇠나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리나, 그 순서가 바로 그의 서열은 아니다. 벚꽃이 사과 꽃보다 몇 주나 먼저 피고 더 화려하게 꽃피우나, 열매로 보면 버찌보다 사과가 아마도 열 배 이상은 클 것이다. 오늘 앞서감이 자신이 성공했다는 증표도 아니고 오늘 늦었다고 패배자도 아닌 것은 식물이나 인간의 세계나 같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좋다. (花看半個 酒飮微醉 - 채근담) 라는 말이 있다. 목표를 달성하고 정점에 도달했을 그때부터가 진정한 내 인생인 삶은 있을 수 없다.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는 상태와 그 과정 중의 모든 것들로 구성된 게 우리들의 삶이다. 결국 우리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정된 ‘명사적 상태’가 아니라 변하고 있는 ‘동사적 상태‘이다. 꽃의 정점은 만개한 상태보다도 활짝 필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반쯤 핀 상태라는 것이 그 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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