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90억 원짜리 황금박쥐를 털려고 했다니, 참으로 대담하다. 90억 원짜리 물건을 전시 중인 곳에 첨단 도난방지장치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황금박쥐 도난미수 사건 뉴스를 접하며 어이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3월 15일 새벽, 3명의 일당이 전남 함평군 황금박쥐 생태전시관의 셔터 자물쇠를 절단기로 잘랐다. 이들은 유유히 셔터를 올렸다. 하지만 금세 경보장치가 울렸고 깜짝 놀란 이들은 그대로 달아났다. 전시관의 방탄유리 출입문을 부수기 위해 해머까지 준비했지만 예상치 못한 경보음에 해머를 버린 채 도주한 것이다.

함평군 대동면에는 세계적인 희귀종 황금박쥐가 서식하고 있다. 함평군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 황금박쥐 생태관을 조성했고 이 때 가로 15㎝, 세로 70㎝, 높이 218㎝의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들었다. 여기엔 순금 162㎏과 은 9㎏, 동 13㎏이 들어갔다. 제작 당시 순금 시세는 27억 원이었지만 지금은 85억~90억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범인들은 도주 중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3명은 어쩌면 고수일지도 모른다. 국내외 유명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에도 남모르는 허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미술관 전시실에 복면을 한 2명의 무장 괴한이 들이닥쳤다. 한 사람은 총으로 보안요원을 위협했고 다른 한 사람은 벽에 걸린 <절규>와 <마돈나>를 잡아당겨 철사줄을 뜯어낸 뒤 유유히 전시실을 빠져나가 도주했다. 30여 명의 관람객들은 놀라서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2003년 5월의 어느 밤, 국립공주박물관 당직실에 30대의 복면 괴한 2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칼과 전기충격기로 당직 학예연구사를 위협해 눈과 입을 가린 뒤 1층 전시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 진열장 유리를 깨고 국보인 백제 불상을 훔쳐 달아났다. 당직실 옆 철제 문은 열려 있었고, 청원경찰은 침입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1911년 8월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청년이 전시실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 유유히 전시실을 걸어나갔다. 경비원들은 박물관 직원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작품을 떼가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1996년 9월 이집트 카이로국립박물관에선 전날 밤 전시실에 숨어 있던 20대 청년이 투탕카멘의 순금제 보검을 양말 속에 감추어 나오다 붙잡히기도 했다.

모두 '박물관 미술관=철벽 보안'이라는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린 사건들이다. 작품들을 무사히 되찾았지만 사건 당시 그곳들의 보안은 엉성하고 허술했다. 함평의 3인조도 그런 허점을 파고들려 했던 것일까. 도난이 미수에 그쳐 천만다행이지만 자꾸만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박쥐는 황금으로 만든 박쥐가 아닌데…. 굳이 수십 억 원을 들여 황금으로 박쥐 조형물을 만들 어야 했을까. 황금박쥐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보존하는데 그 돈을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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