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우리는 누구나 봄을 기다린다. 나도 해마다 이맘때면 상춘(賞春)을 위해 봄이 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기상학적인 봄의 시작은 나의 감정 따위와 거리가 먼 것 같다. 나의 봄은 내 가슴속에 고동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기 때문이다. 내 가슴의 고동 소리는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 커지는 시계추 소리처럼 봄이 짙어짐과 함께 크게 울리는 듯하여 가슴도 아파온다. 왜 이렇게 가슴을 조이며 나는 해마다 봄을 기다리는 것일까? 너무나 애타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다시금 헛되게 보내야 할 것 같기에 이제는 그 이유조차 희미해질 것 같다.

사실 요즘처럼 ‘불확실성 시대’ 또는 ‘불신의 시대’라는 단어를 실감 나게 만드는 경우도 드문 것 같다. 직장이나 사회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만과 거짓 그리고 확실치 못한 이유들로 직면하게 되는 불편함과 부당함은 우리의 심신을 마비시키고 심지어 간접적인 정신적 살인까지 행하는 것 같다. 예컨대, 지난해 유행처럼 터졌던 갑질 논란을 비롯하여 실없는 무지렁이들이 하찮은 권력의 범주에 발을 담갔다하여 서슴없이 앞잡이가 되어 확실한 기준이 없는 규제를 실행하는 모습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불안감이다.

체코 출신의 유태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사후에야 새롭게 평가되기 시작한 「심판」(Der prozess)이라는 작품이 있다. 등장하는 주인공은 요제프 K라는 사람이다. 그는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게 된다. 그 후 요제프 K는 항상 마음속에서 외부의 무엇인가에 의해 자신이 고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또다시 심문을 받으러 법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서가 날아든다.

요제프 K는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 변호사, 화가, 그리고 법정 목사 등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물론, 등장인물이나 환경은 모두 가상적인 존재이겠지만 그것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요제프 K는 누구이며 그의 잘못이나 범죄내용은 무엇이냐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요제프 K의 죄를 종교적 차원에서 보는 공유의 죄의식이나 인간의 나약함에서 오는 무력감이나 절망, 그리고 법정의 규제가 인간의 파계에 관하여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 알려줌도 없이 인간에게 불행이나 파멸을 선고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해석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마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의 업장을 걸머지고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조절이 힘든 측면이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법률상의 규제나 어떤 그릇된 집단의 시시각각 변하는 사적인 규율처럼 그러한 개념에 기준을 두고 보아서는 안 될 중요한 측면이 있다.

때때로 매스컴을 통해 인간을 규제하는 법의 존엄을 묻는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경우도 종종 들어보자. 우리가 복잡하다고 여기는 현대사회는 눈엔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규제의 그물로 얽혀져 있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법대로’, ‘규제대로’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일벌백계되어질 수가 있을까? 고개를 들어 우리 주위를 한번 살펴보자. 속된 말로 ‘아사리판’인 집단에서 협작꾼들이 기준은 없되 과장된 규제로 원칙을 운운하며 권모술수를 합리화시키는 행태들을... ...

하지만 요제프 K와 우리 같은 보통의 선인들은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질서로서 규제의 탄력성을 가지는 것이 실체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참된 법규제의 정신이라 염두에 두고 그것에 순응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며 모두를 힘내라고 시인 힐데도민(Hilde Domin)의 「지치고 피곤해지지 않기를」이라는 시 구절을 읊어본다. “지치고 피곤해지지 않기를 / 대신에 기적을, 가만히 / 작은 새처럼 / 손에 담고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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