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굴러가는 돌만 봐도 까르르 웃던 20대를 지나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다. 예전의 미모가 좀 상실된 것은 그다지 서운하지 않으나, 웃음이 줄어든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TV를 틀어도 웃을 일이 적고, 직업의 특성상 괴롭고 힘든 사람들만 만나니, 심각한 상황에 웃을 수도 없다.

제법 친절해진 바람을 맞으며, 생각해 본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바깥세상 보며 웃을 순 없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유머 있는 사람이 될까?" 한국식으로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풍자와 해학으로 웃으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엄격한 신분제사회였던 조선에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던 분들이 있었으니, 시대와 장소가 중요한 것 같진 않다.

조선시대 3대 정승(政丞)에 들어가는 맹사성(孟思誠)을 시골의 노인으로 착각한 영남의 한 선비는 장기를 두며 친해져 '공,당 놀이'를 제안했다. 묻는 사람은 '공', 대답하는 사람은 '당'을 붙이는 것이다. 맹사성이 먼저 물었다. "무엇하러 서울에 올라가는 공?", "벼슬을 구하러 올라간당.", "무슨 벼슬인 공?", "녹사 자리란당." 한참을 생각하던 맹사성은 "내가 시켜주겠공."이라고 했고, 영남의 선비는 "농담이 지나치당."하고 답했다.

재미나게 농을 주고받던 둘은 헤어졌고, 며칠 후 의정부 관청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영남의 그 선비가 의정부 녹사(하급관리)자리에 응시하고자 들어왔다. 그러자 맹사성은 "어떠하지공?"이라고 장난을 걸었고, 선비는 납작업드리며 "죽었지당."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구하는 선비에게 맹사성의 대답이 걸작이다. "염려놓으시공." 그 이후 선비는 녹사자리에 채용되었다. 계급과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에서 젊은 선비의 농담에 장단을 맞춰주는 맹사성의 인품과 해학은 놀랍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은 당시의 강대국 수나라의 200만 대군과 맞서 싸우며, 당시의 적장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낸 여수장우문시(與脩將于仲文詩)가 유명하다. 신비로운 계책은 하늘의 흐름을 알아서 하고 (神策究天文)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다 알아서 하는 게지    (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긴 공 높을 수밖에 없겠네  (戰勝功旣高) /그만하면 족하니 이제 그치는 게 어떠한지 (知足願云止)

권투로 치면 일종의 어퍼컷(uppercut : 주먹을 밑으로 쳐올려 때리는 타격법으로 접근전에서 상대의 턱밑, 간장, 심장 등 약한 부분을 노려서 치는 것)을 날린 것이다. 이 시를 받고 부르르 떨었을 우중문(于仲文)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엄청난 명문장(名文章)으로 이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풍자는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 약한 자를 놀리는 낮은 수준이 아닌, 지식과 인품과 해학 그리고 풍자가 어우러진 조상들의 유머는 2019년의 나도 미소를 짓게 한다. 중년의 나에게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할 것이다. "나는 유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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