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게 나라냐, 부끄럽다’ 라는 온라인 뉴스 댓글에 쉼없이 올라오고 있다. 현 정권의 일자리·경제 정책이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잘 하고 있다고 자랑하던 외교·남북 관계 마저 갈피를 못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1박 3일간 바쁘게 뛰어 다녔지만 예우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정상회담 성과도 한미간에 현격한 인식차만 재확인하고 돌아왔다.

정상회담을 3차례나 하는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 공을 들여온 남북관계마저 북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로 추락했다. 외교와 남북 관계가 총체적 혼란에 빠져 든 양상이다.

먼저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직후부터 급박하게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일정을 잡고 급박하게 찾아간 워싱턴에서는 내용은 둘째치고 의전에서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대접을 받았다.

국빈 방문이면 백악관에 들어가 곧바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단독정상회담, 오찬(또는 만찬), 확대정상회담, 합의문 공동발표, 기자회견 등의 순서로 진행해야 정상인데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관문을 통과하듯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안보보좌관을 잇달아 접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116분의 단독 정상회담도 TV카메라가 촬영하는 가운데  양국 퍼스트레이디들이 배석한 형태로 진행됐고, 그마저도 양국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통역,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등으로 거의 소진됐다.

화급하게 백악관을 찾아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독대를 회피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상회담의 내용도 양측의 주장과 입장이 크게 어긋나고 결과적으로 양측의 차이만 확인한 수준이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부분적 비핵화 조치를 수용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해 달라는 이른바‘ 굿 이너프 딜’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검증가능한 비핵화(FFVD)’가 이뤄져야만 제재를 완화한다는 ‘빅딜’을 고수했다.

문 대통령의 방한 초청에 대해서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조속히 3차 미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거의 빈손으로 귀국 비행기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외교부나 청와대 참모진이 총출동 하다시피 해서 미국 설득에 주력했지만 미국의 FFVD 주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지내야 할 일본과는 거의 국교단절 수준으로 악화돼 있다.

문 대통령이 귀국하는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 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촉진자’가 아닌 ‘민족 이익 당사자’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북한편에 설 것인지, 미국 편에 설 것인지를 분명히 하라는 압박이다. 그러면서 “오지랍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다”라고 질책했다.

자신을 위해 뛴 사람에게 이런 막말을 던진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양쪽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진영논리에 매몰돼 동맹국과 엇박자를 낸 결과가 양쪽에서 불신을 초래했다. 국가의 안위와 자존심도 상처를 받았다. 동맹관계 회복과 경제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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