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지난해 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 피살 사건, 무고한 여성을 희생시킨 서울 강남역 사건, 논현동 고시원 사건 등 유사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조현병 환자 관리 문제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임세원법’이 국회를 통과해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가 퇴원할 경우 병원은 지자체에 알릴 수 있게 됐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거부하면 불가능하게 됐다. 이번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의 경우 역시 지역 정신보건센터에서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이처럼 조현병자의 정보 공유 허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 유사한 사건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조현병자를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 조현병자 범죄율은 전체 범죄율에 비해 훨씬 낮기는 하다. 피해망상을 품고 폭력 성향까지 보이는 ‘조현병’ 환자는 극히 일부라는 사실은 맞다. 하지만 조현병자가 저지른 범죄는 피해자를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개인 혹은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어 흔히 그런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한다.

하지만 이 단어의 조어법은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묻지마’가 문장이기도 하거니와, 이 문장의 화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여기서 묻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히려 범죄자는 적극적으로 이유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이 ‘묻지마’는 범죄자에게 범죄의 이유를 묻지 말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들여다보면 피해자가 누구이고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말라는, 그런 이유를 묻지 말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조현병자들이 일으키는 묻지마 범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로 삼는 잔인한 행태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우리 사회에서 ‘묻지마 범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범죄가 자칫 대형 참사로 확대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게 더욱 우려스럽다. 우발적 충동으로 범행을 저질러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미리 대처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회 소외층일수록 이런 충동을 느끼기 쉽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범인도 ‘임금 체불’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경제적으로 벼랑에 내몰리고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게 된다. 가족·친구들과도 떨어져 외톨이로 지내면서 좌절과 분노가 쌓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조현병자는 범죄예방 차원에서 평소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조현병자의 공통점은 ‘이유 없이’, ‘무작정’ 선택한 피해 대상이 모두 여성이거나 노약자였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사회 복귀도 중요하지만 시민 안전에도 소홀해선 안 된다.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관리 등 예방 시스템 구축에 허점은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정신보건 관련 예산과 인력 충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신질환 문제는 선천적인 요소도 있지만 취업난과 실업, 불평등 구조적인 요인도 많은 만큼 근본적인 사회 체질 개선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정신질환자 문제는 더 이상 개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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