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충청논단]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오월이 되면 마음의 뜨락에 적당한 햇빛과 바람과 물을 주는 상상을 하며 활짝 피어나는 꽃들을 맘껏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벌써 만개하였던 꽃들이 지고, 초록의 나뭇잎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완연한 봄이다. 엊그제까지 겨울만큼 추웠던 것 같은데 이제 한 여름처럼 한낮의 더위가 온몸을 땀으로 적신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 다녀오는 길가에 활짝 피어있는 철쭉을 바라보는 순간 양재천의 풍성하고 화려한 벚꽃을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 초봄 유난히 큰 일교차 때문인지 오랫동안 심한 목감기로 고생하였던 것 같다. 미세먼지를 핑계로 웬만하면 외부활동을 자제하여 주변의 벚꽃이나 개나리꽃 등 봄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만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누릴만한 여유조차 없는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다.

철들면서부터 늘 생각하며 찾으려고 애를 썼던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나름대로 훌륭한 인생을 설계하고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감당해야할 뿐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어차피 스스로 극복해야할 삶이라면 긍정적인 정서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요즘만큼 시간이 유속처럼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피부로 직접 느낀 적이 없다.

얼마 전 장롱에서 겨울옷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아직 추위가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참견을 하였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결국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무언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나 상황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월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겪는 사소한 일들이 모여 하나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직면하는 문제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당초 예정된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필자는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평소 어머니는 삼십대 후반 늦은 나이에 출산하여 막내아들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걱정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새벽예배를 갈 때마다 아들 방문을 살짝 열어보시고, 돌아오신 후 잠든 자식의 머리위에 차가운 손을 얹고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렇다고 교회에 자주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해 겉으로 내색하거나 강요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거의 없다.

다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기도로 대신하셨을 것이다. 내년이면 백세를 바라보는 연세에다 지금은 치매를 앓고 계셔서 가끔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포근한 눈빛에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것은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애틋해지는 마음이라고 한다. 아마 이런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 찾아뵐 때마다 어머니의 눈과 마주치면 애틋한 마음에 조금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가슴으로 함께 호흡할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너무 가까이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순간이 아쉬울 뿐이다.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기에 그냥 지나치듯 살아간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람관계는 우연히 만나 관심을 주면 인연이 되고 노력을 기울이면 필연이 된다고 한다. 좋은 사람이나 물건은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기분이 한층 좋아진다.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지켜보는 사랑이야말로 오랫동안 간직하며 추억할 수 있는 사랑이다. 외로움은 누군가 대신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오직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 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는 말이 절실하게 떠오른다. 하늘이 내려준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되새기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다. 삶의 과정에서 힘들고 지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가족의 울타리를 통해 결국 인생의 주인이 된다. 지금 당장 찾아뵐 수 있고, 손으로 등을 토닥이며 안아줄 수 있는 어머니의 존재는 큰 축복이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의 작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초록의 터널을 산책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진정 가족이라는 의미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오월의 아침이다. 오래전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해맑은 웃음으로 달려오는 손자의 손을 잡고 초록의 나뭇잎에서 반사되는 빛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초록의 우산아래 비춰지는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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