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오병익칼럼] 오병익 충청북도교육삼락회장

두고두고 가슴에서 커가는 / 아버지 말씀을 듣고 싶다. / “너도 어른 되어 아빠하면 알지… ”/ 말이 그렇지 팔남매 손 벌려 다가설 때마다 / 차츰 휘어지신 등허리 / 어미 소 큰 눈망울 새끼 날 달 채워 가면 / 아버지 말씀도 덩달아 부자./ 자전적 사실을 담은 필자의 동시 ‘아버지 말씀’ 전문이다.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사회, 팔남매 가장인 아버지 삶의 반추가 유독 아리하다. 생각할수록 버거운 과제와 고군분투하면서 강한 척 나약한 앓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었으리라. 그렇듯 입에 풀칠 걱정으로 궁핍하던 때도 치사랑과 내리사랑이 ‘동방예의지국’을 선도했는데 ‘삼강오륜’과 ‘장유유서’는 특정 세대 전설처럼 들린다.

가정의 기본까지 마구잡이로 헷갈리는 ‘너 누구지?’ 시대를 살고 있다. 잘해야 하루 한 끼 쯤 마주한 식탁 앞에서 밥맛은커녕 숨 막힌 분위기다. 할 말은 많은데 대화단절 상태로 호흡만 거칠어진다. 부모역할·자녀노릇 붕괴와 뭇매로 뻥 뚫린 가정의 달을 맞았다. 세파가 아무리 많은 걸 조각낸다 해도 부모 지혜까지 표류하면 좌초나 다름없다. 행동의 낯섦이 가족 틈에 숨어있어선 안 된다. 생각만으로 따뜻한 이름 ‘가정의 온도’를 묻는다.

여느 아저씨들처럼 내 아버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찜해 놓은 한 살 연상의 어머니와 열다섯 살 나이로 결혼하셨다. 일 년이면 제사를 열 번 모시면서 손수 담근 맑은 술은 빠지질 않았다. 지방 몇 자 쓸 때도 손가락이 닳도록 조상님 흠모를 담아내시던 효심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시준비로 정독반을 달굴 즈음 이승을 뒤로 하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 슬픔마저 메마른 어머니 삶은 억장마저 무너졌을 일이다. 몸서리칠 슬픔 속에서도 그럴싸한 말의 진화보다 버거운 멍을 빡세게 발효 시켜 팔남매 날개 죽지를 촘촘히 엮으셨다. 무쇠가 아니면 견디기 힘든 흐린 일기예보까지 맑음 돼 넘나들 정도로….

부끄럽다. 엎질러진 물인 줄 모르고 살아온 불효 반성문을 쓴다. 그 흔한 효도관광은커녕 부모님 생전 근교 한번 번듯하게 나들이를 못했다. 분명, 자식의 채무 불이행 아니면 직무유기다. 그러나 여덟 새끼 외엔 평생 맑은 욕심조차 없으셨다. 우순(牛順)이가 임신한 날부터 콩 한줌을 더 넣어 소의 영양 죽을 만드신 부성애, 김장철 무는 산삼보다 낫다며 딸 아들 입안이 얼얼하도록 먹이시던 모성애의 저 세상, 청순한 소년·소녀로 깨어있으면 좋겠다. 하나 둘 기억을 풀어내니 어렸을 적 설렘 1위였던 “오늘은 읍내 장 날, 우(牛)시장 국밥 먹으러 갈까?” 혹시, 무뎌지면 어쩌나 영원한 빚에 계면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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