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충청의 창]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내가 무엇이기에 매 순간 앙가슴 뛰게 하시나이까. 오월의 꽃보다 더 아름답고 오월의 햇살보다 더 소중해도 되는 것입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밥을 먹고 길을 나서며 일을 하는 새새틈틈 누군가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를 한 없이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나를 고집하느라 고통이 밀려오기도 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은 세상이 야속해 남 탓을 하고, 증오의 벽 앞에서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습니까. 힘들다고 투정부리며 뒷걸음질 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고통과 나의 갈증과 나의 방황과 나의 어리석음으로 갈피 없을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고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내 등 뒤에서 쓰담쓰담 따뜻한 동반자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내게 큰 재산을 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피와 땀을 흘려 일할 수 있는 열정을 주었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었으며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쌀과 곡식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권력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만과 독선과 욕망에 빠지지 말고 항상 낮은 자세로 임하라며, 이웃과 함께하라며 진한 땀방울을 주었으며, 똘레랑스와 노마디즘의 정신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폼 나는 외모를 주지 않았습니다. 큼직한 키에 멋진 얼굴을 마다할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만 자칫 건방떨까 걱정돼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에 머리털까지 숭숭 빠진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아주 못생긴 모습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내게 위대한 스승과 든든한 백도 주지 않았습니다. 스승이 많고, 백이 많으면 건들거리고 자만에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스승이 되고 스스로가 백이 되라며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강인함과 인내를 주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공깃돌 고르듯, 민들레 홀씨처럼 가까이 하면 삶의 향기 나는 사람, 이 땅에 값진 그 무엇이 되라며 책을 읽고 글밭을 가꾸며 가슴 뛰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내 삶의 최전선에서 알곡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열정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불의를 보고 뒷걸음질 치지 말라며, 가족과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며, 해야 할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라며 용기를 주었고 정의를 주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며, 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라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현장에 서면, 문화의 현장에 서면 가슴이 뜁니다.

그렇지만 그대여. 그대가 내게 준 이 많은 성찬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명과도 같은 나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지 성찰의 시간을 갖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묻고 또 묻습니다.

아카시아가 몸을 푸니 오월의 대지가 요동칩니다. 꽃향기 가득하고 신록은 더욱 짙어가며 햇살도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욱 시리고 갈피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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