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세상을 보며] 안용주 선문대 교수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기억이라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 무기력해 진다. 반대편에 서 있는 행복과 기쁨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중에는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왜 일까?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나에게서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을 때 우리는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고 창문을 열 수 있는 일상의 고마움을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자유로움을 알고 싶다면 자유로움을 박탈당했을 때가 아니면 동조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부여된 국방의 의무를 위해 에 입대를 했을 때 그들은 자유로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체험이 동반 되었을 때 우리는 깊은 기억 저편에 두껍고 깊게 그 기억을 아로새긴다.

12.12사태를 통해 군인 전두환이 정권을 잡기위해 계획적으로 광주에 소요사태를 만들었다는 정권찬탈의 기획시나리오가 39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폭격기를 출동시키기 위해 대기시켰다는 인터뷰 기사다.

헬기에서 기관총사격을 한 것도 모자라 텔레비전에서 남의 나라 일로 생각하며 보았던 비행기 폭격을 자기 국민을 상대로 결행시키고자 했다는 증언은 상상할 수 없다. 준비한 무기 그대로 광주를 향해 폭격했다면 20만 명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증언에 말문이 막힌다. 무엇을 위한 살상인가. 자기 국민을 향해.

정상적으로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많은 군인들이 있음에도 정치군인은 호시탐탐 권력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이 80년대와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오늘을 갖게 되기까지 5.18광주의거에서 발현된 희생,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면서 저질렀던 그들의 살상 기록과 살인의 기억을 촘촘히 지우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명명백백하게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은 다시 망각의 늪으로 수감될 것이다.

문재인대통령은 518기념사에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에게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가슴 깊이 오열하셨다. 그 부채의식과 아픔이 민주화의 뿌리가 되었고 동시대를 살아 온 우리 가슴에 피멍으로 자리잡았다.

과거로부터 수혜를 받은 자들이 외치는 ‘이제는 화합할 때’라는 말은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잘 살아 보라는 말과 같다. 국민을 상대로 폭격기를 준비시킨 살인마들에게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유행가의 한 소절을 빌려 써도 되는 것일까?

진실은 묻어두고 덮어두고 손잡고 나가면 그만인 것인가? 기억이 사라져도 트라우마는 남는다. 기억이 소멸되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다.  진보는 늘 망설인다. 왜? 자기가 하는 일의 잘잘못을 스스로의 거울에 투영시켜보는 것이 습관이 된 탓이다. 썩은 보수는 절대 자신을 투영하지 않는다.  왜? 썩은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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