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월요일 아침에] 박기태 건양대 교수

해마다 오월이 오면 사람들은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주저함 없이 읊어댄다. 온 세상이 행복과 기쁨으로만 충만할 것 같은 시기이다. 마냥 설레기보다는 우리는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모습과 언젠가 한 번쯤은 들춰내 보고 싶었던 일들을 혹시라도 잊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때 인 것도 같다.

무엇이든 잊혀지고 잃어버리다는 사실은 슬프다. 살면서, 소유하고 지니고만 사는 삶은 얼마나 화사하고 풍요로운 삶일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생각해 보면 무엇을 얻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잃어버리고 망각하는 과정만이 잔재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일상을 아쉬워하면서도 결국은 포기하고 체념하며 사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월초에 지인으로부터 오월에 가장 걸맞은 한편의 글을 받았다. 연어와 가물치에 대한 이야기다. 깊은 물 속에 사는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에 한쪽을 지키며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곧 부화되어 나올 새끼들이 먹이를 찾을 줄 모르기 때문에 어미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면서 자신의 살을 새끼들이 쪼아 먹으며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새끼들이 그렇게 어미의 살을 먹으며 성장하지만, 어미는 결국 뼈만 남은 채 서서히 세상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연어는 우리에게 위대한 모성애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래서 연어는 ‘모성애의 물고기’라 불린다고 한다.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을 하게 된단다. 그 후 먹이를 찾을 수 없어 어미 가물치는 배고픔을 참아내야 하는데, 이때 알에서 부화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의 입속으로 들어가 굶주린 배를 채워 주며 어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한다. 그렇게 새끼들의 희생에 의존하다가 어미가 눈을 뜰 때쯤이면 살아남은 새끼의 수는 겨우 10%도 안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어린 새끼들은 기꺼이 어미를 위해 희생을 한 까닭에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연어와 같은 모성애는 받고 살아왔으면서도 가물치와 같은 효심은 드리지 못하는 자식들 아닌가? 깊이 반성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말처럼 일생을 살았다 해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 우리 인생이라서 부모에 대한 은혜와 감사함을 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모두 다 자기 편함에 안주하려는 이기심이라고 본다. 속된 말로 우리는 돈과 명예욕과 같은 일에는 적극적이다. 그것들에 의해서 시달린 나머지 삶의 감사함과 지혜를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도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어렴풋이 회귀본능을 느끼게 될 나이가 되면 우리는 철이 드는 것 같다.

무심히 눈길에 스치는 돌과 나무와 구름, 혹은 바람 소리에도 우리의 부모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다고 본다. 사람들이 저마다 떠나고 돌아오는 고향은 단순히 지명으로서의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향이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부모님의 품 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연어와 가물치의 이야기처럼 희생의 감사함을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이 둘의 삶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건강한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인생의 예지가 넘치는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감사의 달’이라는 것도 오월의 끝자락에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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