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2
  • 3
  • 4
  • 5
  • 6
> 오피니언 > 충청시평
감꽃목걸이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5.31  16:33:0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충청시평] 김윤희 수필가·전 진천군의원

 

톡톡 감꽃이 지고 있다. 저녁나절 푸성귀를 뜯으려 텃밭에 쪼그리고 앉았더니 손등으로, 머리위로, 꽃이 내려앉는다. 저를 좀 보아 달라는 신호다. 연노랑이라 할 수도 없는, 누르스름한 빛깔이다. 그것도 잠시, 이내 땅 색깔로 돌아가고 만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몽실이를 떠오르게 한다. 기억 저편에 가물거리고 있는 나일지도 모른다.

앞머리 싹둑 자른 단발머리 계집아이의 목에 걸린 감꽃목걸이는 늘 흙 묻은 색이어서 아름다운 꿈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게다. 깜장고무신만 신던 아이의 가장 큰 꿈은 꽃고무신이 아니었을까. 문득 자발없는 생각에 웃음이 물린다. 상추, 쑥갓, 아욱 포기 사이에 먼저와 자리 잡고 있는 꽃은 이미 흙색이 되어 있다.

‘아하, 어느새 감꽃이 피었다 지는가.’ 밑 빠진 시루모양으로 꽃송이만 쏙쏙 빠져 나뒹군다. 돌아보니 몇 년 전 남편이 앞마당에 심어 놓은 대봉 감나무가 제 혼자 훌쩍 자라 지붕보다 높이 키를 올리고 있다. 애기 손바닥만 한 감잎들 사이에 묻혀 있어 꽃들이 언제 피었는지도 몰랐다. 꽃이라고는 하지만 모양도 크기도 색상도 어느 것 하나 눈길을 끌지 못해 존재 자체가 인식되지 않았다. 그래도 벌들은 용케도 알고 찾아와 윙윙 풍악을 울리고 있다. 잔칫집 분위기다. 그 작고 얇은 날갯짓이 분주하고 소란하다. 여럿이 뭉친 소리의 힘이 느껴진다.

과실 하나를 열게 하기까지 거저 되는 게 없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뿌리를 아무리 깊이 내리고 땅 심을 끌어올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잎을 넓혀 햇살을 많이 받는다고 고운색 과일이 절로 열리는 게 아니다. 벌들에게 꽃의 향기와 귀한 꿀을 먼저 나눠 주어야 한다. 그들이 꿀을 먹으며 앉았다 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가지, 이파리 사이사이로 바람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바람의 어루만짐으로 과육이 숙성된다. 빗물의 혜택은 또 얼마나 많이 받는지 말해 무엇 하랴.

폭풍우가 몰아쳐 가지를 위태롭게 흔들어댄다고 해도 해로운 건 아니다. 열매를 실하고 야무지게 영글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큰 바람이다. 꽃 진 자리마다 맺혀 있는 열매를 욕심껏 매달고 있어서는 절대 좋은 과실을 얻을 수 없다. 떼어 내야할 욕심을 떨어내는 것이 폭풍우다. 비바람 몰아치는 한여름 밤 감나무 가지 우는 소리와 함께 툭툭 땡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제 살점 일부를 떼어내는 소리, 견뎌내야 할 시련의 신음이다.

마당 가득 쏟아진 되잖은 땡감을 쓸어 담아 두엄더미에 버리고 나면 바람결이 순해진다. 볕이 따사로워진다. 단물을 들이는 자애가 서서히 깃드는 까닭이다. 이렇듯 하나의 감이 숙성하기까지 그들은 함께여야 함을 체득하며 익어간다. 이웃하는 것끼리 서로 배려하고 도움을 준다. 가지고 있는 욕심은 물론, 소중한 것도 기꺼이 내어 준다. 비워내야만 비로소 성글성글 여유가 깃든 풍요를 누릴 수 있음을 알고 감꽃을 마당 가득 깔아놓는다.

언제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게 스쳐가던 감꽃이 왜 문득 눈길을 잡아끄는 것일까. 여유를 갖고 한 숨 돌리라는 것인가 보다. 무얼 바라 그리 일 욕심을 부리며 종종 걸음을 쳤던가. 푸성귀 뜯어 넣던 소쿠리 한 켠에 감꽃을 주워 담았다. 아주 오랜만에 무명실에 감꽃을 꿰어본다. 평화롭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