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재 청주ymca 홍보출판위원
수동 골목이 카인과 아벨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세상으로 나왔다. 도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곳을 우리는 잊고 살았다.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은 달동네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갔던 사람들과 이북 피난민들이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 곳이다. 사람들은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며 살았다. 길목 어귀에 구멍가게 하나 숨겨놓고, 모퉁이 어디쯤에 맛집 하나 숨겨놓고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제공했던 곳이다.

골목은 후박나무 잎처럼 섬세한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큰길에서 시작해 여러 갈래 길로 나누어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초입이 어수룩하다. 한두 번 다녀간 골목도 자신 있게 찾아 나섰다가는 낭패를 본다. 구멍 난 양말, 여기저기 기운 내복, 귀한 손이 찾아와도 변변히 대접할 양식 없는 남루한 삶터가 부끄러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유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거나하게 취한 지아비가 '쨍하고 해뜰날'을 흥얼거리며 호기를 부려보는 곳도 골목이고, 안노인들이 양지바른 골목에 앉아 지지리도 궁상맞은 일상을 궁시렁 거리며 오수를 즐기는 곳도 골목이다.

궁상맞은 것 같지만 약한 것을 강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건달도 골목에서 노인을 만나면 허리를 숙이고, 큰길에서 어깃장을 놓던 고급승용차도 골목에선 쩔쩔맨다.

이러한 골목이 개발과 발전에 떠밀려 떼죽음당하고 있다. 수동마저 상혼에 상처 입을까 염려된다. 새벽잠에 취한 도심에서 박스쪼가리며 신문뭉치를 싣고 골목길로 돌아오는 노인이 돌쩌귀가 떨어져나간 대문으로 자취를 감출 때 콧등이 싸 하지만 그래도 골목이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면 욕심일까.

늙어 추해도 좋으니 골목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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