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길어진다. 오늘도 비가 올 듯 말듯 심통 난 서방마냥 바람만 사납게 분다. 정 작가하고 대청댐 언저리를 돌아서 지난겨울 하룻밤을 묵었던 영동의 영국사로 갔다. 푸르름은 싱싱해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아름다운 자연은 무엇인가 늘 새로운 것이 다가 올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부처님께108배를 올리고 대웅전을 나서는데 건너편 요사채에서 처사님이 찔레꽃처럼 웃고 있다. 두 손을 흔들어 반갑다는 인사를 나도 했다. 웃고 있는 그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 질 것 같다. "처사님 많이 바쁘셨죠?"했더니 "어제는 쓰나미가 온 것 같더니 오늘은 물 빠져나간 갯벌입니다".

새로 지은 요사채로 우리를 안내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는지 앞도 뒤도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들려준다.
주지스님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사고가 난건지 차 사고가 났다는 얘기, 공양주 보살님과 싸웠다는 이야기인데 왜 싸웠는지 모른 채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숨이 차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아 속살이 다 보인다.

오래 머물 시간이 없어 돌아오려는데 치마꼬리를 잡는다. 어린아이 같은 처사님은 차 있는 데까지 따라 나오며 가지 말라고 떼를 쓰다가 더 놀다 가라고 붙잡다가 그도 안 되겠는지 작은 불도화 한 송이를 꺾어 처사님 마음이라며 차에 꽃아 준다.

그 마음이 하도 고맙고 안타까워 다시 오겠는 약속을 하고 돌아서는 발길이 무거웠다. 저 처사님이 아니면 가질 수없는 깨끗한 마음이다. 손익에 밝은 사람들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심성이다. 나 같이 때가 묻어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 당황하게도 한다. 무엇이 저를 저렇도록 외롭게 했을까?누군가 처사님 옆에 있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누군가의 사랑에 목 말라있는 처사님의 젖은 눈동자가 안쓰럽다. 도심이나 산속에 있는 절간이나 사람 사는 곳엔 사랑과 관심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

손을 흔들어 주는 그의 얼굴에서 오월의 찔레꽃 하얀 잎이 떨어진다. 산골짜기에 피어있는 찔레꽃향기가 난다.

▲ 김용례
청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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