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수요단상]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도시 변두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던 한 부자(父子)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아들은 쥐구멍에도 햇빛이 들었다고 기고만장하면서 나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논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아들의 배포가 이렇게 바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비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만 살아남는다고 타일렀지만 돈맛을 안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비는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가서 지을 수 있는 만큼의 논밭을 사서 다시 농사를 지었고 아들은 도시에 남아 사업을 한답시고 이 사업 저 사업에 손을 댔다.

돈이란 본래 양고기 같아서 있으면 버러지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 버러지들은 입속의 사탕처럼 굴어주고 매양 허리를 굽실거리고 손을 비비면서 상전을 모시는 종놈처럼 비윗장을 맞춰주게 마련이다. 아들은 여기에 놀아나 하늘이 돈 짝 만하게 보이게 되었다. 돈을 보고 버러지들이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아들은 날마다 펑펑 호기를 부렸다.

돈이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로 말하면 태산같이 쌓인 돈이라도 몇 년 만 탕진하면 먼지처럼 날아가고 만다. 아들은 이런 줄도 모르고 설치는 동안에 사기꾼 기생충들이 양고기덩이를 통째로 말아먹고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아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땅을 쳐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쥐구멍에 햇빛은 사라지고 아들은 막막했다. 어디로 갈까? 이 아들이 덕이란 것을 조금만 알았더라도 졸부인 것을 알아차려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디 땅값이 올라 생겨난 거금 탓 만으로만 졸부가 생기는가. 권력을 팔아 세상을 뭉개는 졸부도 있고 지위를 앞세워 보이는 것이 없는 졸부도 있으며 알량한 지식만 믿고 오만한 졸부들도 있다. 사내 졸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집 졸부도 있다. 50만 원짜리 브래지어를 차고 50만 원짜리 팬티를 입고 우유로 목욕을 하며 몇 천 만 원짜리 보석을 감고 몇 백 만 원짜리의 옷을 걸친 졸부들이 강남에 가면 득실거린다고 한다.

사내 졸부든 계집 졸부든 이러한 치들은 쓰레기에 불가할 뿐이지만 우리에게 사는 맛을 가시게 하고 세상을 썩은 냄새로 진동하게만 한다. 그들은 제 몸 하나만 알뿐 남이야 죽든 말든 아랑곳없다는 무리들이다. 나는 살고 너는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쓰레기에는 모기나 파리만 꼬일 뿐이고 꽃밭에는 벌과 나비가 찾아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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