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충청의 창]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수필가

하늘은 내게 큰 돈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피땀 흘려 일할 수 있는 열정을 주었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주었으며 굶지 않을 만큼의 쌀과 곡식을 주었다. 이따금 내가 하는 일의 대가가 만족스럽지 않아 화가 나고 돈 많은 주변 사람들을 시샘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하늘은 냉혹했다. 돈이 많으면 영혼이 파괴되고 초심을 잃는다며 과유불급(過猶不及), 돈과 자본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했다.

하늘은 내게 큰 시련을 주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를 만나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시련과 아픔과 갈등이 어디 한 두 번일까. 내게 이토록 견디기 힘든 시련을 주는지 야속한 마음을 갖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시련이 아니었다. 더 큰 성장을 위한 아픔일 뿐이었다. 아픔이 없는 성장, 상처가 없는 풍경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음을 묵상케 하고 더욱 정진토록 했다.

하늘은 내게 권력을 주지 않았다. 오만과 독선과 욕망에 빠지지 말라고, 이웃과 함께하라며 낮은 자리를 주었다. 그러면서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이웃과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라며 글밭을 가꾸도록 했다. 매일 아침 글밭을 가꾸며 그릇된 것에서 일침을, 참된 것에는 따뜻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글밭은 지적 자양분이 되었으며 매년 책 한 권 이상을 펴내는 용기가 되고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하늘은 내게 폼 나는 외모를 주지 않았다. 큼직한 키에 멋진 얼굴을 마다할 사람 어디 있겠냐만 자칫 건방떨까 걱정돼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 그리고 머리털까지 숭숭 빠진 모습이다. 그렇지만 아주 못생긴 모습을 주지 않았다. 나만의 멋이 있으니 그나마 봐줄만 하다. 하늘은 내게 위대한 스승과 든든한 백도 주지 않았다. 스승이 많고, 주변 환경이 좋으면 건들거리고 자만에 빠질 수 있다. 스스로 스승이 되고, 스스로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강인함을 주었다.

하늘은 내게 튼튼한 몸을 주지 않았다. 젊은 날 내 몸을 방기했더니 혈당 수치가 580까지 올랐다. 그날 이후로 하루에 2만보를 걷는다. 항상 운동하며 건강 챙기라는 것이다. 아프지 말라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라고 이만한 몸을 주신 것이다. 하늘은 내게 많은 친구를 주지 않았다. 학연과 혈연과 지연에 연연해하지 말라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처럼 지내라며 적당한 거리와 여백을 주었다. 미적인 여백이다.

하늘은 내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공깃돌 고르듯, 민들레 홀씨처럼 가까이 하면 삶의 향기 나는 사람, 이 땅에 값진 그 무엇이 되라며 책을 읽고 글밭을 가꾸며 가슴 뛰는 일을 하도록 했다. 내 삶의 최전선에서 알곡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열정과 도전을 주었다.

오늘 아침, 고승주 시인의 <상처에 입술을 대다>라는 시를 읽었다. “나를 단련시켜온 궁핍/나를 일으켜 세운 절망/나를 떠받들어 온 진리의 숨결이여/산다는 것은 마음속 어딘가에/상처 하나 새겨 놓는 일/그 상처가 단단한 옹이를 만들어 가는 것/오늘 비로소/내가 지닌 상처의 무늬 위에/입술을 가져다 댄다.” 상처 깃든 나의 풍경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상처가 깃들어 있기에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묵상한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길을 가야할지 엄연해진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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