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충청산책] 김법혜 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초등학생 시절, 조그만 자물쇠가 달린 일명 '비밀 일기장'을 사서 쓴 적이 있었다. 일반 노트보다 서너 배 비싸게 팔았지만, 친구들도 그런 일기장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실핀으로도 금방 열수 있을 만한 조잡한 자물쇠였다.

그래도 그때는 그 자물쇠가 나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에도 내 방을 갖고 있었지만, 방문을 잠그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내 물건들, 특히 나의 속내가 담긴 기록들 중 부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숨겨야 할지가 늘 고민거리였다.

어느 날, 가족이 내 일기장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연히 화가 나고 창피했다. 초등학생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생활과 비밀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아동·청소년기에 내가 부모와 맺었던 관계를 보다 한 발 떨어져서 회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종종 아쉬웠다.

나는 부모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숨길지를 궁리하는데 골몰했지, 어떻게 부모에게 나의 일상과 생각을 전달하고 공유할지 고민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겪은 어려움이나 고민 등은 '당연하게'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나에 대해 말하고 너에 대해 듣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는 왜 부모와 작동하지 못했을까?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되고 성인이 된 나중에서야, 사생활이 생기고 내 삶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난 뒤에서야, 나는 부모와의 대화가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당시 부모들은 평범하고 좋은 부모였다. 자식들이 충분히 사랑받았고 지원받았다. 청소년기 사생활을 누릴 수 없었던 건 우리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 그 때 사회가 부모의 자녀 감시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 삶도 행복하게 될수도 있고, 불행해 질수도 있다. 모든 인간 관계가 그러하듯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며 노력해야 행복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애초부터 서로가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만난 이후에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행복은 언제나 그 자리, 가까운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데, 행복을 찾는 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한 감정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인간은 애초부터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도록 설계돼 있다.

살아가면서 삶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기에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모든 것을 초기 상태로 되돌림으로써 행복의 모드를 회복시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남이 내게 준 상처를 보복으로 되돌려주어서는 안 되고 용서와 따뜻한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한다.

상처 없는 인생이 없듯이 살다보면 넘어지고 어려움에 부닥쳐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작용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상처를 치유해주고 사랑의 에너지를 얻게된다. 누군가가 기분이 나쁠 때는 ‘혹시 나 때문이 아닌가?’라는 자책감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행복한 가족으로 보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도 실은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 깊숙이 원망과 증오를 숨긴 채, 사람들은 사랑하는 연기를 하기도 한다. 사랑이 부족해서 상처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순간에도 자기를 비하하고,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을 만날 밖에 없다. 더 많이 웃어 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칭찬해주는 사랑 앞에서는 스스로가 희망을 갖게 해 줄 것이다.

그러려면 행복을 맞이하기 위해 자물쇠가 없는 일기장에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남겨 놓는 것이 어떠한지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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