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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아라크네와 아테네의 대결을 판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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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0  13: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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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프라도 미술관 비야누에바 관 2층 가운데 넓고 둥근 12번방과 양 옆 작은 전시실들에 벨라스케스 작품들이 모여 있다. 12번방 안쪽 벽의 <시녀들>을 마주 볼 때 오른쪽으로 연결된 14번방을 지나 15번방의 안쪽 15A전시실로 들어서면 정면 벽에 <실 잣는 여인들>(220x289cm, 1657년)이 있다. 이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아라크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아라크네 이야기 과정의 서로 다른 장면들을 작품 속 틀(mise en abyme) 구성으로 화폭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시킨다. 전경에는 아테네와 아라크네의 베 짜기 대결 장면이 보인다. 아테네는 왼편에서 머리에 베일을 쓰고 물레를 돌리는 다소 나이든 여인으로, 아라크네는 오른편에서 뒤로 돌아 앉아 실타래를 감는 올림머리의 젊은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가는 아테네와 아라크네의 실잣기 대결 장면 뒤편에 두 단 정도 돋우어진 큰 문틀 안의 무대 공간을 마련하여 일종의 극중극처럼 전경의 베 짜기 대결의 추이를 전해준다. 여기서는 아테네가 투구를 쓴 전쟁의 여신 모습으로 손을 들어 아라크네를 심판하고 있다. 아테네가 아라크네를 심판하는 무대 벽면에 걸린 타피스리는 화가가 은근하게 도입한 또 하나의 작품 속 틀이다.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등에 태워 납치해가는 티치아노의 <에우로페의 납치>가 인용된 타피스리는 전경에서 아라크네가 완성하게 될 작품을 상징한다.

벨라스케스는 아테네와 아라크네의 대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화가는 바퀴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돌아가는 물레로 아테네 여신의 솜씨를 표현한다면, 아라크네의 실력은 화가의 또 다른 작품 <거울을 보는 비너스> 속 뒤돌아 누워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뒷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녀가 처음에 거친 양털을 공처럼 감든, 손가락으로 매만지든, 하얀 뭉게구름 같은 양털을 매만져 길고 부드러운 실을 뽑든, 민첩한 엄지손가락으로 가느다란 물레 가락을 돌리든, 바늘로 수를 놓든, 그녀의 솜씨에는 언제나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는 오비디우스의 설명처럼 아라크네의 탁월함은 완성된 옷뿐만 아니라 베 짜기 모든 과정의 솜씨에 깃든 우아함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신화에서 아테네는 베 짜기 여신인 자기보다 실력이 뛰어난데다 제우스의 추태를 작품에 담아낸 오만한 아라크네에 분개하며 아라크네의 작품을 찢고 그녀를 거미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권위를 내세워 상대방의 재주를 꺾고자 하는 아테네 여신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실력으로 맞서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고자 한 아라크네에게서 화가를 천시하던 고질적인 편견 앞에서 자신의 직업의 고귀함을 보여주고자 실력으로 귀족이 되려했던 화가 자신을 보아서일까. 화가는 거미가 된 아라크네를 화면에 담지 않았다. 대신 실잣기 대결 장면이나 아테네의 심판 장면에서 아테네가 아닌 아라크네에게 환한 조명을 비춰줌으로써 오직 솜씨와 우아함으로 입증한 아라크네의 승리에 손을 들어 주었다.

   
▲ 벨라스케스, 실잣는 여인들, 220x289cm 1657년 경. 프라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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