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표적인 풍습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경'을 보면 조선시대 여인들이 단오를 어떻게 즐겼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산속에서 치맛자락을 날리며 그네를 타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며, 봇짐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한적하게 표현돼 있다.

24절기의 세시풍습 중 가장 대표적인 단오의 정겨운 풍경은 근대화 이전까지만 해도 시골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다. 음력으로 5월 5일인 단오에는 다가올 여름의 질병과 재앙을 막기 위한 의례적인 행위가 있었다. 여성들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붉고 푸른 새 옷에 창포 뿌리를 깎아 붉게 물들인 비녀를 꽂아 몸단장을 했다.

남자들은 창포 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액을 물리쳤다. 사람들은 더위에 대비해 부채를 선물했다. 방방곡곡에서 이 같은 세시풍습이 행해졌고 단오굿도 펼쳐졌다.

지금은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지만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는 충북지역에서 가장 크게 단오풍경이 펼쳐졌던 곳이다. 초정리에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맑고 알싸한 물이 있었고 수려한 자연과 꽃보다 아름다운 초정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오날이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서 인생에 생기와 활력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농사일을 접고 모두가 새 옷을 입고 마을 한 가운데로 모였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흥겨움이 있었던 것이다. 여인들은 공식적으로 바깥나들이를 허용해 줘 친정에 다녀오거나 자기네들끼리 계곡 등지에서 녹음과 꽃물결을 따라 원 없이 놀았다.

약수가 샘솟는 원탕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었으며, 남정네들은 웃옷을 벗고 등목욕을 하고 걸쭉한 동동주를 마시며 사물놀이를 즐겼다.

이 같은 의식은 하루 중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오시(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에 진행되었는데 초정리의 약물로 머리와 얼굴을 씻고 손과 발을 닦으며 몸을 정갈하게 하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까지 있어 문전성시였다. 실제로 초정리 약수는 땀띠 같은 피부병은 물론이고 속이 쓰라리거나 위장병을 앓을 때 마시면 치료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단오부터 늦가을까지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창포에 머리를 감는 풍습은 양기 가득한 녹색식물의 에너지를 머리로부터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단오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 옷을 입었는데 이것을 단오빔 또는 단오비음이라고도 했다. 시골에서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은 추석과 설, 한식과 단오의 4대 명절뿐이었는데 집집마다 단오빔으로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한 뒤 차례를 지내고 새 음식을 먹었다.

어머니는 이날 증편과 앵두화채를 맛나게 해서 우리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한 뒤 발효시켜 쪄낸 폭신한 증편에는 밤 대추 등 견과류까지 넣어 동네에서 맛 좋기로 소문났다. 또 토종꿀을 섞은 약수에 붉은 앵두를 띄운 앵두화채는 인스턴트식품이 없던 그 시절 최고의 청량음료였다.

5월의 정원에 초여름 냄새가 난다. 대자연은 푸른 기운으로 가득하고 애나 어른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할 것 없이 녹색혁명을 쫓느라 부산하다. 그렇지만 단오의 행복했던 추억은, 초정리의 사랑스런 풍경들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기억의 저편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다. 청주·청원 통합의 염원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당에, 이처럼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정겹고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되살리는 노력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우리의 혼과 마음을 담아 미래세계를 섬길 수 있는 오달진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 변광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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