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영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되게 쑥스러운 일이다. 아내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버지학교의 첫날 숙제다. 아니 한 지붕 밑에서 살 부비며 살아온 것이 벌써 20년도 넘었는데 새삼스레 사랑은 무슨 얼어죽을 사랑인가? 그저 같이 살면 사랑하는 것이고 가끔 외식이나 쇼핑을 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정도로 성실한 남편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심 이렇게 큰소리치며 살아왔던 터였다.

어쨌거나 숙제를 해야 다음 주 조별 토론에 참여할 수가 있고 조장이 아내에게 확인을 한다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의 뒤로 다가가 엉거주춤 안아주면서

'여보, 사랑해.' 모기소리만한 고백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그때였다. 눈을 등잔만하게 뜨고는 아내가 묻는다.'아니 왜 그래? 어디 아퍼?' 멋쩍어진 나는 황급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오며 '이거, 숙제야!' 라고 내뱉었다.'그러면 그렇지.' 냉소적인 아내의 대답에 그러나 살짝 묻어 있는 미소를 얼핏 보았다.

무덤덤한 하루가 지나고 다시 다음 날 퇴근하는 현관, 마중 나온 아내를 큰맘 먹고 안아주었다.

'여보, 사랑해. 이건 진짜야.'

그 순간 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가슴을 파고들며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왜 우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크게 잘못 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깊이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사랑이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리를 하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전혀 다르다. 그런 행위는 사랑 행위의 2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80%는 따뜻한 눈맞춤과 사랑 고백, 안아주기, 배려와 공감하기 등이라고 한다.

남자는 과업지향적이기 때문에 결혼마저도 하나의 성취해야 할 과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잡은 물고기에 떡밥을 더 이상 주지 않듯 아내에게 사랑의 눈길을 주기가 어렵고,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재산 모으기 등 다른 과업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반면 아내는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하여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인데 남편이란 작자는 벌써 저만치 딴 길로 가며 엉뚱한 짓을 하니 이때 아내들은 '속았다. 저럴 줄 몰랐다. 결혼 전과 딴 사람이 되었다.'고 가슴을 치는 것이다.

'그런 걸 말로 해야 아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라고 하는 것은 독심술을 배우라는 것과 같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결혼한 지 30년 만에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느 목사 사모님이 울면서 한 말이다.

아내는 남편의 표현되지 않는 사랑으로 늘 갈급하다. 아내는 청각지향적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 해 줘야 행복하다. 아내는 촉각지향적이기 때문에 손을 꼭 잡아주거나 따뜻히 안아주어야 행복하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아내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에게 물려 줄 가장 큰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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