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우리는 늘 길을 간다. 걷든지 자동차를 타든지 아니면 또 다른 수단으로 길을 간다. 아침에 떠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 머물다 아침이 오면 또 다른 날의 길을 간다. 일상이라는 익숙함 속에서의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매일 떠나고 돌아오고 또 다시 떠나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는 늘 길 위에 서 있다. 길 위에 서면 언제나 설렌다.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미지의 시간들이 가슴을 뛰게 한다. 익숙하면 익숙한 대로 낯설면 낯선, 그대로의 시간들이 묘미가 있다.

모처럼 일상의 길에서 여유를 내, 길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출발했다. 길 위에서 길을 시작했다. 수많은 길들 속에서 방황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를 향해 가야 겨우 짬을 만들어 낸 나의 시간들이 손해를 안 볼지가 먼저 앞을 섰다. 일상을 탈출 한다면서 나선 길, 결국 일상의 시간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든 출발했다. 남쪽을 향해 달렸다.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길이기에 남쪽으로 쭉 뻗어있는 도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그리곤 북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오는 길! 그 길에서 잠시 멈추었다. 멈춘 길 위에서 큰 나무를 보았다. 전국 곳곳에 유명한 나무들이 많지만, 목적지 없이 떠나 온 여행길에서 마주 하게 된 나무다. 수령 600여년이 된 안동하회마을 삼신당신록이라는 나무다. 지금은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같은 민간 신앙이 많이 사라졌지만 옛날엔 의지 할 곳 없는 백성들이 나무며 바위 등등에 소원을 빌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소원을 비는 나무라 하여 특히 일본사람들이 많이 와서 본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와 아베정권과의 대립 갈등이 심각한 상황인데 묘하게 마주치는 접점이 되었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나무 앞에 잠시라도 머물다 갔을까! 앞, 뒤 없는 아베의 행위에 진정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나무 앞에 머물다 갔길 바란다. 순간 바람결 따라 삼신당 신록이 몸서리치듯 나뭇잎들을 후르르 털어낸다.

담장처럼 나무둘레에 소원지가 하얗게 묶여있다. 마치 눈이 내려 쌓인 듯하다. 그도 처음엔 실낱같은 뿌리 하나로 시작 되었을 것이다. 땅속에 묻혀 어둠속에서 수많은 시련들을 이겨내고 버티며 생명을 지켜낸 뿌리! 나무의 밑둥치가 거대하다.

뿌리의 역할은 땅속에 깊이 박혀 식물을 서 있게 하며 그들을 비, 바람 속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것이다. 그뿐이랴! 식물에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들을 흡수하고 저장해서 식물이 잘 자라도록,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준다. 뿌리가 튼튼해야 식물들이 잘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식물의 크기가 클수록 뿌리의 크기도 크다.

이 또한 식물뿐이겠는가! 그들이 어둠 속에서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소중하게 지키고 가꿔 온 지금 이 시간위에 우리가 서있다. 복잡하고 쉽지 않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 끝없이 이어져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삶의 본질과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좀 더 단단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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