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청주랜드관리사업소 주무관

 

[기고] 김은진 청주랜드관리사업소 주무관

무더위를 피해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청주랜드를 찾고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쫴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찐득거려도 마음껏 달리고 싶은 우리 아이들. 체력을 소진한 엄마는 그늘에서 쉬고 싶은데 아이들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어른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에 구석구석을 다녀본다. 한편에 놓여있는 봉숭아 화단이 어여쁘다. 여름 꽃은 봉숭아가 단연 최고다.

봉숭아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란다. 다 익은 꼬투리는 사람의 손길이 조금만 닿아도 톡 하고 터지며 말려 들어가면서 안에 있던 씨방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연약해 보이는 봉숭아는 사실은 자연의 흐름에 무척이나 순종하는 꽃이다. 무엇이든 스스로 알아서 잘 하려는 꽃이다. 한여름 태양의 열기에 순종하는 봉숭아는, 장마철에도 끄떡없는 봉숭아는 서리 내리기 전까지 그 꽃을 피운다. 때가 되면 씨방이 터지고 바람에 날린 작은 씨앗들이 땅속으로 파고들어 이듬해 다시 수 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난다.

어릴 적 집집마다 소중히 보관되던 장독대 주변에는 어김없이 봉숭아가 피어 있었다. 그해 장맛이 변하면 사람이 건강을 잃는다고 믿었던 어머니들은 장독대를 닦으면서 아침 해를 맞이하고 달빛을 보면서도 장독대를 청소했다. 봉숭아는 뱀이 집안에 못 들어오게 집 주변을 지키는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금사화(禁蛇花)'라고도 불린다.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깃털을 숨긴 봉황의 모양과도 흡사하다. 잎사귀는 파종하면 둥글게 피어나던 이파리가 자라면서 잔털과 가시가 톱니바퀴처럼 돋아난다. 봉황을 지키려는 자태다.

소녀의 순정도, 자연의 순종함도, 어머니의 애틋함도 모두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청주랜드에서는 해마다 봉숭아를 심고, 가꿔 여름이면 꽃잎 물들이기 행사를 한다. 스스로도 잘 피어나는 꽃이지만 청주랜드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 한여름이 지나고 씨앗 꼬투리가 맺히면 봉숭아 씨앗을 받아뒀다가 이듬해 4월 중순에서 5월 파종을 한다. 씨앗을 뿌린 뒤 3주 정도 지나면 밭에 옮겨 심기를 한다. 밭에 양분이 과하면 봉숭아는 비바람에 쓰러지기 쉽고 아이 키보다 훨씬 웃자라기도 한다. 조금 척박하다 싶은 밭에서 봉숭아가 튼튼하게 자라고 씨앗을 많이 남긴다.

봉숭아 물들이기 행사는 7월에서 8월 진행한다. 아빠 엄마와 직접 꽃잎을 따 콩콩 찧어서 작은 아가 손톱에, 어여쁜 엄마 손톱에, 커다란 아빠 손톱에 얹고 서로서로 묶어준다. 손톱에도 물들이고 하얀 손수건에도 물들인다. 잎사귀도 함께 넣고 빻아야 물도 잘 들고 색도 더 선명하다고 꼭 말해준다. 봉숭아는 버릴 게 없는 꽃이다. 아이들의 콩알만 한 손톱에 봉숭아 물이 오래도록 남으면 좋겠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남으면 좋겠다. 아이의 첫사랑이 꼭 이뤄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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