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서원대 교수

 

[내일을 열며] 이광표 서원대 교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벌써 11년째다. 현재 이 상주본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경북 상주의 배익기 씨. 상주본의 법적인 소유자는 국가다. 오랜 소유권 논란 끝에 올해 대법원은 “배 씨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배 씨가 훈민정음 상주본을 내놓지 않으면 강제집행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배 씨는 “정부가 1000억 원을 주지 않으면 훈민정음을 내놓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불법 점유자 배 씨가 훈민정음을 인질 삼아 정부와 국민을 겁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8년 10월, 황천모 상주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상주본 소장자와 박물관을 건립해 상주에 보관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증받기로 잠정 합의가 됐으며 이를 위해 문화재청과도 협의 중이다.” 2019년 1월엔 이런 말도 했다. “상주박물관을 지어 훈민정음 해례본을 넣어준다면…이것을 국보 1호로 추진하는 겁니다. 상주시민들이 모여서….” 7월 말엔 배 씨 집으로 찾아가 “상주본을 조속히 공개하고 보존 방안을 마련하자”고 했다.

7월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해 출연해 배 씨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배 씨가 반환을 하면 그 대가로) 상주에 국립한글박물관 분점을 세워 명예관장의 기회를 주고 한글 세계화를 위한 한글세계문화재단을 만들어 적절한 수준의 예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배 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문화재청 사이에서 적극 중재하겠다.”

황 시장이나 안 의원의 발언은 배 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발언들을 냉철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금만 신중하게 평가해 보면, 이들의 제안은 실현 가능성도 별로 없는데다 합리적이지도 않다. 적절치 못한 제안이고 비효율적인 전략이다.

배 씨는 문화재를 소장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재를 불법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문화재를 훼손 파괴하고 있다. 2015년 배 씨의 집에 불이나 훈민정음 일부가 불에 타기도 했다. 배 씨는 불에 타 일부가 훼손된 훈민정음 해례본 낱장을 2017년 세상에 공개했다. 그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국립한글박물관 명예관장이라니. 말도 안 된다. 국립한글박물관에 대한 모독이다. 게다가 상주에 무슨 근거로 국립한글박물관 분관을 짓는단 말인가. 자칫 국회의원 힘을 믿고 내뱉는 발언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황 시장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보 1호 운운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이미 불에 타 훼손된 상주본이 국보 1호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배 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해도, 즉흥적이고 지나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의원님, 시장님의 진중하지 못한 발언들. 오히려 배 씨가 잘못된 생각을 고집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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