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다섯 명의 딸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딸들이 과년하자 그에게는 일과 하나가 늘었다. 해질 무렵이면 문간에 서서 귀가하는 딸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는데 어두워지도록 숫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머리를 빡빡 깎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 대문을 통과해 귀가한 딸 중에 몇 명은 야심한 밤이면 뒷문 출입을 애용했다. 문이 닫힌 것처럼 문고리를 살짝 걸쳐놓거나 숫자를 재확인할 때를 대비해 이부자리 속에 베개를 넣어 이불을 부풀려 놓은 일도 잊지 않았다.

방문만 열어보고 말던 아버지가 무슨 눈치를 챘는지 어느 날 방안으로 덥석 들어와 이불을 걷어내고 벽에 베개를 내동댕이쳤다. 엄포의 위력이 맥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가위를 움켜쥐었다. 평소에 했던 말처럼 머리카락을 빡빡 깎으려면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면도칼을 들어야 마땅하겠으나 그가 들은 가위는 이가 나가고 날이 무뎠다. 어머니가 평소에 사용하던 가위였는데 마른 고추를 다듬을 때나 쓰던 물건이었다.

야밤에 벌어진 소동 덕분에 자매들은 약간의 겁을 먹었다. 그러나 자연스런 혈기를 막을 길이 없어 뒷문 출입은 여전했다. 일부 잘린 머리카락도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가려 거의 표시가 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 쑥쑥 자랐다. 대문 검열에 후문 검열이 추가되어 가끔 같은 소동이 벌어지긴 했어도 누구의 머리도 빡빡 깎이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열심히 외웠던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의 박사 고깔 속 승려가 비구니라고 단정했었다. 만약 머리를 깎인다면 기꺼이 당하리라 맹세한 것은 순전히 이 시 덕분이었다. 구례 화엄사에서 지긋이 고개 숙인 비구의 투명하게 빛나는 목덜미를 보고 난 후 고깔 속 승려가 여승이라는 생각을 고쳤다. 차 도구와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전부인 방에 앉은 비구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자신을 감추지 않겠다, 치장하지 않겠다’는 표시였으며 수행에 전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당나라 도선 율사는 ‘광홍명집’에 삭발의 의미를 이렇게 밝혀 놓았다고 한다. ‘삭발은 속세를 등지는 절차이다. 도를 닦으려는 자는 속세를 등지는 데 힘써야 한다. 세속을 등지려면 머리부터 깎아야 한다. 머리를 깎고 용모를 바꾸는 것은 고상하고 소박하게 살려는 데 뜻이 있다. 부모와 이별하고 애착의 껍질을 벗겨 성인이 계신 곳으로 가 탐욕을 떨쳐내고 소박한 마음이 되어 육신의 집착을 잊고 깨달음의 결과를 얻기 위하여 머리를 깎는 것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거나 관심을 두지 않아 절박한 사람은 극단적인 수단으로 저항한다. 그때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 삭발 투쟁이고 고공 행진이다. 삭발 도구로는 뭐니 뭐니 해도 면도칼이 단연코 으뜸이다. 바리캉 따위로는 푸른빛이 도는 진정한 삭발을 할 수가 없다. 깎다가 만듯한 머리는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진다. 최근 벌어진 제1야당의 삭발 릴레이도 바리캉을 이용했단다. 하늘이 텅 비었다. 언제 올라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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