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전 언론인

[김종원의 생각너머] 김종원 전 언론인

역설적이지만 위기일수록 필요한 직업들이 있다. 소방관이 대표적이다. 재난이 많을수록, 화재가 잦을수록 소방관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재난과 화재현장에서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낸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검찰과 나라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범죄가 많아지고 치안인 흔들릴수록 경찰, 검찰이 필요하다. 외침이 발생하면 군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범죄를 소탕하고 외침을 제압하는 조직과 그 조직원들에 대해 존경과 신뢰를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재난이 없고 범죄가 없고 외침의 위협도 없다면? 소방관 경찰 검찰 군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난이 없고 범죄가 없고 외침의 위협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소방관 경찰 검찰 군대 등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같은 이야기지만 위기가 사라지자 필요없는 조직이 됐고, 이 때문에 위기를 조장해 명맥을 이으려 했던 조직도 있다. 스파이 영화 단골 소재였던 세계 냉전 시대 이후 주요 강대국 정보기관들 이야기다. 냉전이라는 위기가 있어야만 존재했던 이들 조직은 냉전이 사라지자 존재의미를 상실했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정보기관 자체에서 위기를 조작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이런 일들은 영화같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과거 국내 정보기관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용공사건을 조작하는 등 위기를 통해 조직 운영을 한 적도 있다. 위기를 통해 조직의 가치를 인정받고 필요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경우엔 지속적으로 그런 일들이 발생해줘야 한다. 그런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직이 사라지거나, 또 다른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 위기에 처할수록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외부에 있지 않고 그 내부에 있다. 외부에서 도움을 받아 일시적으로 곤란을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정치를 예로 들면, 위기에 처한 정치를 살려내는 방법은 정치권 스스로에 있다. 특출한 인물, 특출한 정당 등이 나타나 새로운 정치를 슬기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타협과 협상, 모든 문제를 정당하고 공평하게 풀어내는 합리적 정치가 그 해법이다. 정치권 내부에서 그런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 교육이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 해법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교육을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내부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언론이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 해법 역시 내부에 있다.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개혁을 하는 것'이다. 주체는 언론이다.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언론을 개혁한다면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혁은 '언론이 개혁을 해나가는 것'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기회쪽에 무게를 실을 때 개혁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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