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충청칼럼]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뉴스 보기가 싫다. 사람 만나기가 싫다. 양쪽으로 나누어져 죽을 듯이 논쟁한다. 왜들 그런지 모르겠다. 웃으며 만나서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다가도 지난 8월부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사이가 벌어진다. 나라 전체를 양극단으로 만든 건 지 양극단이 어쩔 수 없이 된 것인지 몰라도 한 마디로 피곤하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인들 사이뿐만 아니라 친인척 사이에서도 영 어색해지기 일쑤이다.

80세가 되신 큰형님께서는 매일 카톡으로 자료를 보내오시는데 보기에 피곤하다. 그래도 오늘은 모처럼 좋은 글을 보내오셨다. 제목이 ‘우유 한 잔’인데 내용이 참 좋다. 1880년 여름 미국 메릴랜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고학생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방문 판매를 다녔기 때문에 저녁 무렵에는 온 몸이 지칠 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습니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10센트 동전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 돈으로는 뭘 사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 집에 가서는 뭐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 “계십니까?” 현관문을 두드리자 예쁜 소녀가 나왔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이는 차마 배고프다는 말은 못하고 물 한 잔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녀는 젊은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큰 잔 가득 우유를 담아 왔습니다. 젊은이는 그 우유를 단숨에 마셨습니다. 그러자 온 몸에 새로운 힘이 솟아는 듯 했습니다. ”우유 값으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소녀는 이렇게 말합니다.“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이 말에 큰 느낌을 받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성인이 된 소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맙니다.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큰 도시에서 전문의를 모셔와야만 했습니다.

이때 참으로 묘한 일이 일어납니다.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이하게도 전문의로 찾아 온 그 의사의 이름은 ’하워드 켈리‘, 소녀에게 우유를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였습니다. 켈리박사는 단번에 그 소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정성과 의술을 동원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중병인 그녀는 켈리박사의 정성어린 치료로 건강을 되찾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여인은 퇴원을 앞두고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 걱정하며 청구서 봉투를 뜯었지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되었음” 그가 바로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설립자인 하워드 켈리입니다.

위의 글을 보며 느끼는 것은 뿌린 씨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받는다는 것이다. ‘이랑이 저랑되고 저랑이 이랑이 되는 것’이 인생 법칙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싸움의 기술만을 익히는 것 같다. 화해의 기술, 서로 배려하는 친절의 기술을 익히면 안 될까? 민초들은 피곤하다. 정치 싸움 그만보고 가을의 미소를 보고 싶다면 이것이 비단 나만의 소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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